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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다리도리와 ZombieCooKiE , 저 훈지공명, 훈지공명 동생 이렇게 4명이서 플레이 했습니다.
구미에 계신 숨겨진 보드게이머님들 모임의 문은 언제나 활짝 열려 있으니 문을 똑똑 두들겨 주심 감사합니다~
우리는 여러분을 잡아먹지 않아요~~
게다가 저는 유부라서 상관 없는데 총각들만 드글거려서 여성회원분이면 우대가 좀 있을 거 같네요.
1.보난자
사진은 못 찍었네요...;
다리도리와 다른 멤버 기다리면서 플레이 해보았습니다.
보난자는 무조건 4인 이상!을 외치는 저로서는 별로 기대도 안했는데 2인플도 제법 재밌더군요.
카드교환을 위한 협상이 없는 대신에 카드 오픈 한 것을 남을 줄지 내가 가질지에 대한 선택이 괜찮았습니다.
게다가 빨리 끝나고 ㅋㅋㅋ
보난자가 맡긴 하지만 다른 카드게임 하는 느낌이 많이 들었습니다.
2.파라오코드.
요즘 자주 플레이 합니다.
제가 늙어간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게 만드는 게임이죠.
절대로 1등은 못하는...
하지만 2등은 하는 게임입니다.
다리도리와 ZombieCooKiE와 함께 플레이 했습니다.
초반에는 다리도리의 무서운 계산 능력으로 1등을 했지만 다음판에는 역시 젊은피 ZombieCooKiE가 이겼습니다.
저는 소소하게 2등 ㅋㅋ
이거 파티게임 맞죠?
그런데 왜 저는 이 게임만 하면 머리가 아픈걸까요...;;
2.쇼군
쇼군은 그리 좋아하는 게임은 아니었습니다.
뭔가 아쉽다는 느낌을 받았던 게임인지라 샀다가 방출했습니다.
하지만 다시 플레이 해보니 꽤 좋은 게임이었습니다.
무조건 치고박아야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게임인 것 같았습니다.
필자의 동생이 합류하는 바람에 1년만 했는데 게임 종료시점도 명확하고 꽤 좋은 느낌이었습니다.
중간에 끝냈기에 등수는 중요하지 않지만 뭐 저 1등했습니다 ㅋㅋㅋ
3. 루미큐브
제가 무척이나 좋아라 하는 게임인 루미큐브입니다.
얼마전에 클럽으로 구매했습니다.
역시 두꺼우니까 게임 할 맛이 납니다.
뒤늦게 합류한 필자의 동생이 간식을 한아름 사서 들어와 그것을 먹으며 담소를 나눈후 시작했습니다.
류미큐브야 머 워낙 유명하니 특별 코멘트가 필요하겠습니까마는
보드게임 입문에 이것보다 더 좋은 게임은 없은 것 같습니다.
저도 이것으로 입문하고 푸코로 넉다운 당했었죠 ㅋ
제가 1등했습니다 쿄쿄쿄.
큐브 뽑을 때 조커 2개가 몰려 놔와서리 ㅋㅋㅋㅋ
4. 석기시대 하지만 제껀 석기시대
다다의 평가는 그리 좋지 않지만 저는 무지하게 좋아하는 게임입니다.
남들이 선택할 액션을 저도 선택해야 하는데 먼저 선점하는 쾌감이 좋더군요.
컴포넌트도 예쁘고 평생 방출하지 않을 게임입니다.
1위는 석기시대를 처음 접하고 집에가서 BSW로 연습까지 한 ZombieCooKiE가 하였습니다.
뭘 해야 할지 감을 못 잡고 있던 다리도리와 필자가 붕 떠 있을 때 갑자기 치고 나오더군요.
하지만 저랑 점수차이 얼마 안났다구욧!
순대국밥집에서 같이 저녁을 먹었는데 다시는 거기 가지 말아야 할 것 같습니다.
맛이 없더군요,....;
그전에는 맛있었는데 ㅋㅋㅋ
아무튼 저희 모임 화기애애합니다~
저녁도 같이 먹고 여러가지로 참 재밌다구용~~
1. 루미큐브.
온다는 인원이 2명이 펑크가 되었습니다. 한명은 장염 때문에, 또 한명은 피로 때문에... 아무튼 다리도리군과 저와 루미큐브를 하였습니다. 루미큐브 버전은 클럽! 역시 타일이 두꺼우니 게임 하기에 여러모로 편하기는 합니다만...
잘 쓰러지더군요. 아무래도 아랫부분을 살짝 깎아서 앞으로 쓰러질 듯 만들어 놓은게 가장 큰 요인인 것 같은데, 오히려 타일이 더 두꺼웠음 좋았을 것 같다는 느낌입니다.
2. 문명
드디어 문명을 하게 되었습니다. 너무 하고 싶었지만 룰이 뭐랄까... 명확하지 않은 느낌이었습니다. 설명을 듣고 게임을 해보고 나니 알겠더군요. 그러고나서 룰북을 읽으니 이해가 완전히 되는 느낌이었습니다.
게임은 정말 재밌는 것 같더군요. PC판 문명을 꽤 제대로 옮겼다고 생각합니다. 테크트리 타는 맛도 있고, 쪼이는 맛도 있고 버라이어티하다는 말밖에는 드릴 수밖에 없네요. 제가 문명 게임은 쓰루 디 에이지스만 해봤는데 그것보다는 저는 이 문명이 더 좋은 것 같습니다. 물론 쓰루 디 에이지도 좋은 게임이지만 저의 취향에는 문명이 더 맞아 떨어지더군요.
그런데 3인플인데도 두명이 초심자다보니 시간으 3시간 가량 소모 되었습니다. 그래도 시간 가는 줄 모르겠더군요. 역시 문명은 보드게임으로 해도 문명인겁니다. 언제 한번 리뷰를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게임이었습니다. 이제 복귀도 했으니 리뷰를 찬찬히 써 나가야겠지요.
2. 스퀸트
개인적으로 픽셔너리보다 더 재미있는 스퀸트!
하지만 오랜만에 하니까 모양 표현이 힘들더군요. 한창 모임할 때는 서로의 성향을 잘 아니까 이상한 모양 만들어도 맞추곤 했는데 새로 시작한 모임이다보니 그게 힘들었습니다. 전반적으로 파티게임이니 웃고 떠들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문명을 하고 난뒤 머리 풀기에는 너무 좋은 게임이라고 생각했습니다만...!
단어들이 너무 어려워요! 이걸 어떻게 표현하라는 거야!! 저런 도형으로 노래부르기를 어떻게 만들어! 안해!!!는 아니고... 아무튼 가끔 난해한 단어들 때문에 애먹기도 합니다. 픽셔너리처럼 그리는게 아니라 임의의 도형으로 조합해서 만들다보니 참...;;;;
3. 파라오코드.
코리아보드게임즈의 뉴멘님이 만드신 거라고해서 토이저러스에서 그냥 냉큼 집어온 파라오코드!
게임에 솔직히 기대 많이 안했습니다. 하지만 재미있더군요. 무지 재미있었습니다. 하지만 번뇌하였습니다. 내가 이렇게 머리가 안 돌아갔었나 하고... 쉬운 숫자조합도 모래시계가 떨어지는 동안에 생각이 안나는... 저의 머리는 이제 완전히 굳었나 봅니다...ㅠ,ㅠ
게임은 참 좋은데 컴포넌트의 질이 그렇게 좋지는 않더군요. 사진도 이쁘게 나왔듯이 컴포넌트 아트웍은 나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마감이라고 해야 하나요? 그런 것들이 좀 아쉬운 것 같습니다. 게다가 박스도 쓸데 없이 엄청 크더군요 ㅋㅋㅋ 하지만 이 가격대에 이런 재미라면 충분히 좋은 게임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룰도 간단하고 엄청 유쾌하게 했습니다. 이렇게 좋은 게임을 만들어 주신 뉴멘님 감사합니다.
4. 텀블링 다이스.
안타깝게도 깜빡하고 사진을 찍지 않았어요...ㅠ,ㅠ
근데 저는 이 게임에 대해서 오해하고 있었습니다. 이 게임은 내기를 걸어야만 재미있다라는... 하지만 오늘 그 상식이 깨지고 말았습니다. 3인으로 돌렸는데 의외로 재밌더군욧!! 마치 스포츠 하는 느낌이었습니다. 모두들 다 재미있다고 하니 저도 덩달이 재미를 느낀거죠. 계속 한판더를 외쳤지만 이제는 우리가 돌아가야 할시간... 어쩔 수 없이 판을 접어야 했던 비운의 게임입니다.
텀블링다이스를 끝으로 저녁을 먹으로 갔습니다. 인동의 하회마을 찜닭집에서 맛있는 찜닭을 먹고 각자 집으로 고고씽~ 오늘도 즐겁고 재미있는 보드게임 모임이었습니닷!
다음에 또 만나요~~~~
이들은 며칠을 이 마을에서 지냈다. 이곳은 계급이 존재하고 있었다. 본토민과 이주민으로 나뉘었는데 본토민은 이 방벽을 세울 때부터 있었던 자들이며, 이주민은 말 그대로 이주한 자들이다. 이주민은 본토민의 부역을 담당하고 있었는데 말이 이주민이지 노예나 마찬가지였다. 본토민은 보통 장사나 전문직으로 비교적 쉽고 편한 일에 종사했다. 그들은 식량사용권을 쥐고 있었기에 이주민은 그들이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가 살던 방벽도시가 개 같았어도 이정도로 개 같지는 않았어.”
피터는 주변을 둘러보고 이죽거렸다. 가축처럼 일하는 이주민의 모습이 눈에 많이 거슬리는 모양이었다.
“그나저나 이 아줌마는 언제 강하게 해준다는 거야.”
하류는 벼 이삭을 뜯어서 입이 물었다. 말이 무섭게 한 남자가 다가왔다.
-록산느님께서 부르신다.-
하류는 눈을 크게 뜨고 그의 뒤를 따랐다.
록산느는 자신의 집에서 안경을 쓰고 무언가를 손글씨로 쓰고 있었다. 그들이 들어오자 책을 덮고 안경도 벗었다.
“안경 누님이었군.”
피터의 얼굴이 붉어졌다.
“나 저 누님한테 반할 것 같아, 보이.”
하류는 피터에게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래, 하류. 이곳 생활은 할 만한가?-
-최악.-
-왜?-
-사람이 사람 위에 있는 게 말이 되는 건가?-
록산느는 웃음 지었다. 하지만 대답은 하지 않았다.
-한 가지 부탁할 것이 있어. 아니... 너를 위한 것이니 부탁이라고 할 것도 없을 것 같네.-
-뭐지?-
-일단 이걸 받아.-
그녀는 하류를 향해 양피지를 던졌다. 그는 그것을 받아 들고 펴보았다. 지도였다.
-이건?-
-이제부터 너를 아공간으로 보낼 거야. 그 안에는 탑이 하나 있다. 그곳으로 향하는 지도야.탑에서 양피지에 적힌 물건을 들고 와. 쉽지는 않을 거다.-
-이게 어째서 나를 위한 것이지?-
하류는 인상을 찌푸렸다. 아무래도 이건 자신을 위한 일이 아니다.
-탑에 가면 너를 강하게 해줄 것들이 많이 있어. 할거야, 말거야?-
속는 느낌. 하지만...
-속아주지.-
하류의 대답에 그녀는 미소로 답했다.
-그 아공간이라는 곳은 언제 보내 줄 거지?-
-지금.-
하류와 피터의 밑에서 커다란 구멍이 생겼다. 두 사람은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구멍으로 빨려 들어갔다.
“이게 뭐야!!!”
“나는 왜!!!”
피터의 경악에 찬 목소리가 록산느의 방안에 크게 울렸다.
-차맛이 좋군. 역시 차는 한국 녹차야.-
록산느는 한가하게 차를 마셨다.
“으아아악!!!”
“우와아악!!”
두 사람은 아래로, 아래로 하염없이 떨어졌다. 주변은 그저 검은색이었다. 저 아래서는 하얀색의 빛이 보였다. 저곳이 바로 이 공간의 끝인 듯 했다. 하지만 이정도 가속도로 떨어지면 즉사다. 무언가 방법이 필요했다.
“제발... 생각하자!”
하지만 아무런 방법이 없었다. 이대로 떨어지는 것 밖에는...
“이봐, 아저씨! 마법사라매! 어떻게 좀 해봐!”
“마법사라고 이런 상황을 이겨낼 수 있는 건 아니야!”
두 사람은 계속해서 소리를 지르며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하얀빛이 가까워 졌다. 이제 끝이다.
“으아악!!!”
하지만...
“응?”
아주 사뿐히 땅으로 내려왔다. 이상했다. 구멍으로 떨어지고 또 떨어지면서 엄청난 가속도를 느끼지 않았던가.
-뭘 그래 놀래? 내가 이정도 대책도 마련 안했을 것 같아? 그리고 조심해. 이곳에는 무시무시한 것들이 드글드글 하니까.-
구멍 안에서 록산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동시에 구멍이 막혔다.
“여기는...”
기괴했다.
하얀빛이 뿜어지는 곳도 있었지만 대체로 어두웠다. 식물 같은 것은 없어 보였다. 기괴하게 솟은 돌들이 주변을 을씨년스럽게 만들었다. 아직까지 생명체는 보이지 않는 듯 했다.
“이곳이 어디지?”
하류는 지도를 펼쳤다. 하지만 펼쳐도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다.
“줘봐.”
피터가 지도를 받아 쥐었다. 그는 고심하며 지도를 바라보며 주변을 바라보았다.
“여기쯤인 것 같군.”
그는 지도의 한켠을 가리켰다.
“그리고 우리가 가야할 곳은 여기.”
지도의 중심에 있는 표시. 그는 저 멀리 보이는 탑을 응시했다.
“저곳이야.”
피터의 말에 하류는 이죽거렸다.
“지도고 뭐고 필요 없잖아.”
그는 앞으로 걸어 나갔다. 길게 죽 뻗어 있는 길에는 그로테스크한 모습과는 달리 아무런 위험이 없었다. 위험뿐만이 아니라 생명 자체가 없는 공허한 곳이었다.
“잔뜩 겁을 주더니 아무것도 없네 뭐.”
하류는 약간 화가 난 듯 미간을 찌푸렸다.
“원래 이렇게 성격이 급하고 거칠었나?”
피터의 물음에 하류는 고개를 절래 흔들었다.
“몰라.”
하류는 힘차게 앞으로 나아갔다. 조금씩 하류의 성격이 밝아지는 듯 했다. 그와 비례해 거칠어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한창 예민할 10대가 아닌가. 피터는 밝아진 하류의 모습이 보기 좋은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아무리 걸어도 탑에 가까워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가까이 보이는 듯 했으나 이 정도라면 탑의 규모가 상상이라는 말이 된다.
크르륵...
어디선가 스산한 소리가 들려온다. 맹수의 으르렁거림. 피터와 하류는 본능적으로 전투태세를 갖추었다. 하류는 나이프를 쥐고 주변을 바라보았다. 피터는 주먹을 쥐어 복싱 자세를 취했다.
“이제 드디어 시작인가?”
하류의 말에 차가운 말에 피터는 소리쳤다.
“쇼타임!!”
그의 외침과 동시에 어둠 속에서 한 마리의 거대한 맹수가 뛰어 올랐다. 사자의 머리를 하고 있었지만 몸은 전갈이었고, 다리는 말이었다. 꼬리는 징그러운 뱀이었다. 기묘하게 생긴 야수는 빠르게 하류를 향해 달려들었다. 아무래도 약해보이는 쪽을 먼저 공략하려는 듯 했다.
“하압!”
하류는 기합과 함께 뛰어올랐다. 달려오는 야수의 머리에 착지하고 나이프를 정수리에 꽂아 넣었다. 강렬한 야수의 고통의 표효가 사방으로 퍼진다. 그와 동시에 거대한 턱을 향해 피터의 주먹이 날아든다.
“어퍼컷!”
야수는 공중으로 붕 떠올랐고 하류는 재빨리 뛰어올라 공중에서 한바퀴 돌아 착지했다. 야수는 우당탕 소리를 내며 아무렇게나 처박혔다.
“덩치에 비해 약하군.”
하류는 나이프를 집어넣으려 하는 찰나 피터의 인상이 날카로워졌다.
“아직이다, 보이.”
그는 심각한 표정으로 저 멀리 바라보았다. 엄청난 크기의 물체가 접근하고 있었다. 흡사 공룡같지만 날개가 달렸고 더 날카롭게 생긴 거대한 파충류,
“드래곤??? 설마 저게 존재한다고??”
하류는 놀란 듯 소리쳤다. 피터는 심각하게 바라보았다. 그의 손에는 붉은 불꽃이 이글이글 맺혀갔다.
드래곤의 입에서도 불이 이글거렸다. 드래곤의 깊은 숨. 브래스. 저것을 맞았다가는 바비큐가 될 것이다. 하지만 이 길다린 길옆으로는 기암괴석으로 피할 틈이 없었다.
“제기랄!!”
브레스는 이미 그들을 향해 전진했다.
“바리어!!”
피터는 손을 뻗었다. 그들의 앞에 투명한 막이 형성되어 브레스와 부딪쳤다. 세상을 집어삼킬 듯 한 굉음과 함께 사방으로 불꽃이 튀었다. 하지만 두 사람은 무사했다. 피터가 생성한 바리어 때문인 듯 했다. 허나 이것도 오래가지 못할 듯 했다. 피터의 손이 부들부들 떨리며 조금씩 불타오르고 있었다.
“으악!!”
역시 더 이상은 버티지 못하는 듯 피터는 튕겨져 나갔다. 뒤이어 하류도 튕겨져 나갔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들이 튕겨져 나간 이후 브레스는 즉시 멈췄다.
“으윽...”
하류는 몸을 일으켰다. 피터 역시 몸을 일으켰지만 팔을 쓰지 못하는 듯 축 늘어트렸다.
“버텨냈어.”
하류의 말에 피터는 고개를 절래 흔들었어.
“끝난 게 아니야. 저기 아직 저놈은 남아 있어.”
드래곤은 이미 그들의 앞까지 나와 있었다. 브레스는 연이어 사용하려면 시간이 걸리는 듯 시도는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꼬리가 두 사내를 향해 날아들었다.
두 사내는 비명도 못 지르고 튕겨져 널브러졌다. 하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드래곤을 바라보며 살기를 내뿜었다. 그의 손에는 누런 뇌전이 스멀스멀 맺히며 사방으로 스파크를 뿌렸다.
“크르륵...”
마치 야수와 같이 갸르릉 거리는 소리를 내는 그의 시선은 드래곤을 향했다. 초점이 없는 눈동자로...
“하류...”
피터는 그를 바라보았다. 의식이 없는 듯 했다. 하지만 그는 분명히 서 있었다. 이성이 없는 야수처럼 빠르게 드래곤을 향해 달려들었다 드래곤의 꼬리가 다시한번 그를 향해 덮쳐왔다. 하류는 그 빠른 속도의 공격을 더 빠른 속도로 뛰어 넘었다. 당황한 드래곤은 앞발을 던졌다. 하류는 그것마저 피하며 공중으로 솟구쳤다. 하늘로 뛰어오른 그의 손에서는 스파크가 강렬하게 이글거렸다.
드래곤의 눈동자는 강렬한 스파크를 바라보며 떨려왔다. 이 거대한 생명체가 하류의 힘에 눌리고 있었다. 뇌전은 조금씩 기다란 창처럼 화했다. 그것을 하류는 빠르게 내던졌다.
금빛 뇌전의 창은 이 공간을 가르듯 유성처럼 뻗어갔다. 정확하게 드래곤의 정수리에 박히는 뇌전의 창.
사방으로 드래곤의 고통의 울림이 퍼졌다. 이렇게 강렬한 울림은 또 없으리라. 온몸은 뇌전으로 이글거렸다. 파지직 거리는 소리로 온몸이 타고 있었다. 사방으로 단백질이 타는 듯한 누린내가 퍼졌다. 하류는 착지 하며 거친 숨을 내쉬었다. 이윽고 그는 그대로 쓰러졌다.
“하류...!”
피터는 힘든 몸을 일으켰다. 하류를 향해 다가갔다. 그는 숨을 쉬고 있는 것이 기절한 듯 했다. 죽지는 않았다.
“흐음... 엄청나구만.”
그는 커다란 드래곤을 바라보며 읊조렸다. 이 엄청난 힘을 지닌 생명체를 하류는 이겨냈다.
“이녀석은 괴물인건가.”
피터는 그의 몸을 일으켰다.
“큭..”
그 역시 많이 다쳤다.
“참... 뒤치다꺼리 힘든 동생이군.”
피터의 얼굴에는 알 수 없는 미소가 감돌았다.
“으윽...”
드디어 하류의 정신이 돌아오는 듯 했다. 피터는 기쁜 듯 그를 더욱더 부축해 일으켰다.
“어떻게 된거야... 아까 그 괴물은?”
“네가 죽였...! 크윽...!”
피터가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복부로 기다란 돌기 같은 것이 뻗어 나왔다.
“이건!”
하류는 뒤를 돌아보았다. 드래곤이었다. 드래곤이 마지막 힘을 짜내어 피터를 공격한 것이다. 하류를 공격한다는 것이 그를 공격한 듯 원망이 가득한 눈동자로 죽었다.
“제기랄...!”
하류는 화가 난 듯 드래곤을 향해 달려가 발길질을 날렸다.
똑똑똑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
지하감옥은 몇 년이 되었던 간에 습하고 더럽다. 지푸라기가 아무렇게 쌓인 이곳에 하류와 피터가 너부러져 있다. 두 사내는 아직 마취가 풀리지 않은 듯 잠들어 있었다. 얼굴로 더러운 물방울이 똑똑 떨어지자 그들은 눈을 떴다.
“으윽...!”
누가 먼저라 할 것이 없이 머리를 매만졌다. 깨질듯 아픈 듯 인상은 무척이나 일그러졌다.
“아... 구질구질하구만.”
피터는 아픈 머리를 매만지며 지푸라기를 벽 쪽으로 모아 기대고 앉았다.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칙칙한 이끼와 미끄러운 무언가가 만져지자 피터의 얼굴은 일그러졌다.
“도대체 이렇게 더러운 곳은 뭐하는 곳이야.”
피터는 계속 머리를 매만졌다. 한쪽 속으로는 손에 묻은 더러운 액체와 고체의 중간상태의 것을 털어냈다. 하류는 그대로 누워서 그저 허공만 쳐다보았다.
“도대체 며칠을 정신을 잃었던 거지? 꺼내줘 이 병신들아! Mother fucker!!”
피터는 소리 질렀다. 그의 외침에 간수가 철창을 탁탁 치며 조용히 하라고 눈치를 줬다. 피터는 입을 삐죽이 내밀었다.
하류는 몸을 일으켜 창밖을 바라보았다. 달이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다. 흑단 같은 하늘에 달은 진주처럼 빛났다.
“응?”
달 아래 흰빛으로 빛나는 아름다운 인영이 내려왔다. 푸른 달빛을 받아 영롱하게 빛나는 인영은 아주 아름다운 모습의 여신과도 같았다. 너무도 아름다워 도저히 살아 있는 생명체로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허나 펄럭이는 긴 머리카락 사이로 보이는 뾰족하고 긴 귀는 깃털로 뒤덮여 있었다.
“샬록이군.”
하류는 인상을 찌푸렸다. 아무리 아름다운 모습이라고 해도 샬록이다. 인간을 괴롭히는 샬록.
“피터아저씨 가자.”
하류가 일어섰다. 피터는 의아해하며 물었다.
“이봐, 보이! 내가 아저씨라고 하지 말랬지.”
“이곳에 있는 샬록이 우리 아버지가 아니라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했어. 더 이상 있을 이유가 없지.”
피터는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그럼 이곳에 남아 있을 이유는 없군.”
“피터아저씨는 남아 있어. 같이 움직일 이유가 없잖아.”
“노예가 되길 싫거든. 그건 내가 결정한다, 보이.”
피터는 자리를 털고 일어나 철창 앞으로 나아갔다.
“이봐.”
그는 간수를 불렀다. 간수는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좀 쉬어.”
피터는 그의 목덜미를 살짝 쳤다. 간수는 힘없이 쓰러졌고 피터는 철창을 잡았다.
“흐읍...!”
숨을 들어 마시고 철창을 구부러트리는 피터. 하류는 인상을 찌푸렸다.
“할 수 있으면서 왜 안 한거야?”
“해달라고 하지 않았잖아, 보이~?”
두 사람은 철창이 구부러진 틈을 따라 밖으로 나갔다.
감옥의 복도에 서 있는 간수들을 조용히 소리 없이 하나씩 처치했다. 모두 죽이지는 않았다. 그저 기절만 시킨 것이다. 사람을 죽이지 않고 기절만 시키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이다. 이것은 두 사람이 바운티헌터로 일 해왔던 경험 때문인 듯 했다. 감옥을 빠져 나온 피터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주변 100미터 안쪽에는 인간으로 추정되는 열원이 없음.”
“도대체 어디까지가 기계야?”
“비밀이야.”
피터는 빠르게 내달렸다. 하류 역시 그의 뒤를 따랐다.
감옥은 다행이도 방벽과 얼마 차이가 나지 않은 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범죄자들을 가두는 곳이니 인가와는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 좋긴 하다.
“그래도 너무 쉬운데?”
피터의 말에 하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슨 말이야?”
“아무리 평화로운 곳이라지만 탈옥한 사람들을 쫓는 사람이 없잖아. 아무리 우리가 소리가 없이 움직였다고 하지만 조용하기도 너무 조용해.”
"평화에 찌들어 있겠지. 샬록의 보호 아래 식량도 많겠다. 무슨 걱정이 있겠어.“
하류의 말에 피터는 고개는 끄덕였으나 찌푸려진 미간은 펴지지 않았다.
그들은 능숙하게 벽을 기어올랐다. 아무리 매끈하게 만들어진 방벽이라도 틈은 존재하는 법. 그 틈을 잘 집어서 조금씩 올라갔다. 방벽의 끝으로 올라와 머리를 조금 내밀고 살폈다. 방벽 위 수비병이 하품을 하며 한가로이 거닐고 있었다. 피터는 훌쩍 뛰어올라 그의 목덜미를 툭 쳤다. 이 근처의 수비병은 이자뿐이었다.
“허술해.”
피터는 인상을 다시금 찌푸리고 방벽 밖을 보았다. 그는 조그마한 돌멩이를 집에 던졌다. 어느 정도 날아간 돌멩이는 푸른 불꽃이 일며 파지직 거리는 소리와 함께 사스러졌다.
“저 에너지 장벽을 없애지 않으면 밖으로 나갈 수가 없을 것 같아.”
피터의 말에 하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찾아보면 방법이 있지 않을까?”
하류의 물음에 피터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무리야. 아마도 이 장벽이 이 방벽도시의 치안을 허술하게 만드는 것 같군.”
-맞는 말이에요.-
순간 일어난 인기척에 하류와 피터는 깜짝 놀라 뒤로 물러섰다. 뒤쪽에는 아름답게 빛나는 하얀 느낌의 여인이 서 있었다. 여인이라고 하기에는 앳돼 보였지만 앳돼 보이기에는 뭔가 중후한 느낌이 흘러 넘쳤다.
-당신이 이곳을 다스리는 샬록인가요?-
하류의 물음에 그녀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아니, 나는 도움을 줄 뿐이에요. 이들 위에서 군림하거나 하지는 않는답니다.-
환한 웃음을 보이는 그녀의 모습에 하류는 인상을 찌푸렸다. 인간을 도륙하는 샬록의 웃음이라기에는 너무도 환했기 때문이다.
-어디를 가시려는 거죠?-
그녀의 물음에 하류가 달려들려 했다. 하지만 피터가 막아섰다.
“넌 샬록의 힘을 알고 이러는 거야? 지난번 몰록의 힘을 봤잖아. 몰록과 샬록의 힘은 동등하다.”
피터의 눈이 냉철하게 빛났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만 당신이 걱정할 것은 아닌 것 같군요.-
샬록의 말에 피터는 하류를 바라보았다.
“오지랖이 넓다는군.”
“잘 알고 있다고 말해라.”
“그럴 필요 없을 거야.”
하류는 피터가 막아설 틈도 없이 그녀를 향해 달려들었다.
“나도 샬록의 피는 흐르고 있어!”
그의 손에서 누런빛의 뇌전이 이글거렸다. 샬록의 여인의 얼굴이 굳어졌다. 뇌전은 샬록의 힘 중에서도 가장 강한 기운이다.
“먹어라!!”
하류는 그녀를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하지만 그의 주먹은 그녀의 가녀린 손아귀에 멈춰 섰다.
“아니!”
하류는 놀라고 말았다.
-힘은 어떻게 발현했지?-
-힘을 발현했는지도 몰랐어. 난 그저 당신의 얼굴에 한방 먹이고 싶었던 것뿐이야.-
그녀는 피식하고 웃음을 보였다.
-인간인가?-
-3분의 1은 인간이지.-
그녀의 얼굴이 다시금 찌푸려졌다.
-샬록과 몰록과 인간의 혼혈인가?-
하류는 고개를 끄덕이며 뒤로 물러났다.
-샬록과 몰록과 인간의 혼혈이라... 거기에 샬록의 힘 중 가장 발현이 힘들다는 뇌전까지...-
그녀는 하류를 아주 흥미로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마치 과학자가 실험 대상을 만난 눈빛이었다.
-당신을 억류하겠어요.-
“할 수 있으면 해봐!!”
하류는 크게 외치고 샬록의 여인에게 달려들었다. 이제는 그의 양손이 뇌전으로 뒤덮였다.
-뇌전은 그렇게 쓰는 게 아니야.-
여인은 손을 들었다. 그의 손에서 푸른 뇌전이 이글거렸다.
-이렇게 쓰는 거야!-
그녀가 팔을 휘두르자 푸른 뇌전이 하늘로 올라가 구름에 머금어졌다. 순식간에 벼락처럼 떨어지는 푸른 뇌전!
“하류!!!”
하류에게 직격했다. 그는 뇌전에 몸이 감전되어 부르르 떨더니 그대로 주저앉았다.
-걱정 말아, 인간. 아... 기계가 섞여 있군. 아무튼 이 소년은 무사하니까. 죽지 않을 정도로만 했으니까.-
그녀는 피터에게 손가락을 까닥했다. 따라오라는 제스처. 피터는 쭈뼛거리고 뒤따랐다. 후다닥 달려가 하류의 심장소리를 귀에 대고 들었다. 미약하게나마 심장은 뛰었다. 그런 그를 바라보던 그녀는 한숨을 내쉬며 손을 까딱 위로 올렸다. 그러자 하류가 떠올랐다. 그녀는 뒤돌아보고 걸었다.
-그래도 나 이외에 뇌전을 쓰는 존재는 처음 보는데? 아... 2번째인가? 그 녀석 말이야.-
그녀는 뒤 돌아 보았다. 피터가 쭈뼛거리고 있었다.
-안 따라오고 뭐해!-
그녀의 카랑카랑한 일갈에 피터가 정신이 번쩍 든 듯 몸을 움찔했다. 그녀의 말뜻은 알 수 없었지만 그는 그녀의 뒤를 따랐다. 지금 그녀의 심기를 건드려 봤자 좋을 게 하나도 없으니까.
그들이 이동한 곳은 이 방벽도시의 중심에 위치한 하얀 건물이었다. 대리석으로 지어진 건물은 샬록의 건물과 양식이 비슷했다. 허나 재료를 구할 수는 없었는지 샬록의 그것과는 달랐다. 그 앞에는 두명의 병사가 지키고 있었다. 샬록은 인간보다 그 힘이나 지혜가 더 뛰어나다. 이런 병사가 지키고 있을 필요가 없다. 하지만 이곳의 인간들이 그녀를 신처럼 따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녀는 경비병들에게 웃으며 목례하고 안으로 들어섰다. 안으로 들어서자 인간의 집과 많이 다르지 않았다. 가구며 모든 것이 인간이 쓰는 것들이었다.
“악취미로군...”
피터는 혀를 내둘렀다. 인간을 동경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인간을 좋아하는 것만은 확실했다. 샬록이라면 인간을 죽이는 것이 더 어울리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피터는 다시 한 번 혀를 내두른다.
-앉으세요.-
피터에게 권하고 그녀가 손짓하자 침대 위로 하류가 살포시 눕혀졌다. 피터는 무슨 말을 하는지 몰라 멀뚱히 서 있었다. 그녀는 그에게 의자를 가리켰고, 그는 그녀의 의도를 알아채고 자리에 앉았다.
어색한 침묵.
피터는 에스토란토어와 영어만 할 수 있다. 이 샬록은 이곳의 언어인 ‘한국어’와 샬록의 언어만 사용할 수 있다. 이상한 기류가 흐르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녀가 자리에 앉아 시중을 드는 여인이 차를 가지고 나왔다. 그녀를 향해 샬록의 여성이 무엇인가 말을 하자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은 영어를 할 수 있나요?”
여인의 물음에 피터는 고개를 끄덕였다.
“영어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었군요. 이제 덜 답답하네.”
피터는 의자에 몸을 푹 맡겼다.
-내 이름은 록산느에요.-
그녀의 말을 피터에게 통역했다. 피터는 고개를 끄덕였다.
“난 피터.”
피터는 대화의 물고를 튼 것 같이 한숨 놨다.
“왜 우리를 이곳에 데리고 온 거지?”
그의 물음에 록산느는 웃음을 보이며 대답했다.
“저 소년에게 관심이 있거든요.”
“하류에게?”
“그래요.”
하류를 바라보던 록산느는 천천히 차를 들이켰다.
“샬록과 몰록의 혼혈은 그리 많지가 않거든요. 게다가 저 소년은 인간의 피도 흐르는 것 같더군요. 거기에 나 이외에 샬록의 역사상 단 한명만 쓸 수 있었던 뇌전을 쓰니 더 관심이 가는 거죠. 게다가 그 뇌전을 사용한 사람도 혼혈이었거든요.”
굉장히 빠르게 말을 이었다. 피터는 넋이 나간 표정으로 여인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웃으며 차근차근 그녀의 말을 통역해 주었다.
“한마디로 실험체로 쓰겠다는 거군.”
“아뇨. 달라요. 이 소년을 강하게 만들어 주겠다는 거죠.”
강하게 해주겠다는 말에 피터는 눈을 크게 떴다.
“사실 우리는 하류의 아버지를 만나기 위한 여행 중이었지. 하류 속에 감춰진 힘을 일깨워 주기 위해. 당신이 강하게 만들어 준다면 우리야 바랄게 없지.”
“저 소년은 왜 강해지고 싶은 거죠?”
“몰록에게 복수하기 위해. 당신은 왜 이 아이를 강하게 만들려는 거지? 하류는 샬록 몰록 인간의 피를 모두 가지고 있지만 인간에게 더 가까운 아이야. 힘을 일깨워 준다면 샬록의 적이 될 텐데 괜찮나?”
피터의 물음에 그녀는 옅은 미소와 함께 말을 이었다.
“나는 인간들의 기준으로 보면 학자에요. 학자에게 탐구는 어떠한 것보다 더 신성한 것이죠. 난 학문을 위해 이 소년을 강하게 하려는 거에요. 하지만 우리 샬록에게 해를 끼친다면 죽일 수밖에 없어요.”
“그거 협박인가?”
피터는 차를 마시며 그녀를 노려보았다.
“네.”
록산느의 대답에도 피터는 그녀를 한참을 노려보았다. 강렬한 살기는 마치 인간의 것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이 강렬한 기운에 샬록인 록산느도 압도되는 듯 했다. 하지만 그녀는 샬록 인간에게 압도당할 사람은 아니었다.
“그만 노려보지 그래요?”
그녀의 핀잔에 피터는 살기를 거두었다. 그때 하류는 신음소리와 함께 깨어났다. 일어난 그는 한참을 두리번거렸다. 싸움 이후의 난데없이 집안으로 들어와 있으니 어안이 벙벙할 만도 했다.
“여기는?”
“우리 집이야.”
록산느의 말에 하류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다시 싸우기 위해 자세를 잡았다. 하지만 뇌전의 여파는 아직 가셔지지 않은 듯 다리를 휘청거리다 무릎을 꿇었다.
“그렇게 긴장할 것 없어, 보이.”
유유자적 차를 마시는 피터의 모습을 본 하류는 그를 나무랐다.
“지금 적의 집에서 차나 마실 때야?”
“일단 적은 아닌 것 같다, 보이.”
하류는 록산느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옅은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난 록산느. 너를 강하게 만들어줄 사람이야.”
“이유가 뭐지?”
록산느는 하류를 재미있다는 듯 쳐다보았다.
“그저 무료했다고 하면 말이 되려나? 하지만 공짜로 가르쳐 주지는 않아.”
“무슨 소리냐.”
“지금이 우리 샬록과 몰록이 전쟁 중인 것은 알고 있지?”
“그것을 모를 리가 있나. 덕분에 우리 인간이 힘겹게 살고 있으니까.”
우리 인간이라는 말에 더욱더 재미있는 듯 미소는 짙어졌다.
“그래서 그 전쟁에 너를 투입하게 될 거야.”
“무슨 이유에서이지?”
“난 학자야. 싸움에 나서고 싶지 않아. 하지만 나에게도 체면이라는 것은 있거든. 너는 나의 종자로서 싸우는 거야.”
하류는 생각에 잠겼다. 무엇이 그에게 더 이익인지 머리를 굴리는 중인 듯 했다.
“정말로 날 강하게 해줄 수 있어? 어떻게 당신을 신뢰해야 하지?”
“믿지 않아도 좋아. 하지만 난 이세계의 영웅이라고 불리던 인간도 내 손으로 교육 했으니까.”
“그래서?”
하류의 또다시 이어진 물음에 그녀는 찻잔을 내려놓고 말했다.
“너 몰록에게 복수하고 싶다고 했지? 몰록에게 복수하려면 몰록과 만나야 될 거 아니야. 네가 복수하려는 몰록이 누군지 모르겠지만, 네가 싸우고 또 싸워야 만날 수 있을 거 아냐. 싸울수록 만날 확률이 높아질 거 아냐.”
그녀의 조리 있는 말에 하류는 고개를 끄덕였다.
“믿어보지.”
“이봐 소년.”
하류의 대답에 아직 그녀를 믿을 수 없는 피터는 만류하는 듯 했다. 록산느는 그 둘을 신경도 쓰지 않은 채 그저 차만 마실 뿐이었다.
“차맛이 좋군.”
3.
이곳은 반도에 위치한 어느 한 지역이었다. 예전에는 하나의 민족이 분열하여 서로 대치하던 곳이기도 하다. 넓지도 않은 땅인데 지금도 샬록과 몰록이 대치를 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예나 지금이나 이곳은 지정학적으로 굉장히 중요한 위치인 듯 했다.
하지만 예전처럼 이곳은 실록이 푸르지 않다. 사막과 바위로 가득한 메마른 땅이 되었다. 4계절이 뚜렷한 것이 이 지역의 자랑이었지만 이제는 아니다.
그곳에 자리 잡은 아주 커다란 방벽도시. 방벽의 높이는 그리 높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을 둘러싸고 있는 강맹한 에너지가 느껴졌다. 날아가던 새가 방벽도시를 향해 다가오자 파지직 소리를 내며 타버리고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인간의 기술은 아니로군.”
방벽도시의 앞에 선 금발머리의 사내가 망토로 가린 입을 다시 보이며 말했다. 그는 피터였다.
“샬록의 기술이 아닐까?”
하얀 뾰족하고 길다린 귀를 가진 회색머리의 소년 하류가 읊조렸다. 그의 얼굴에는 씁쓸한 듯도 하고 기쁜 듯도 한 묘한 웃음기가 감돌았다.
“그럼 이곳에서 네가 강해질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는 건가, 보이?”
피터의 물음에 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아버지를 만나야 가능하지.”“네 아버지는 샬록과 몰록의 혼혈이라고 했잖아. 그가 있으니까 이 방벽도시가 샬록의 테크놀로지를 가지고 있는 것 아닌가?”
“그건 모르는 일이야. 샬록의 기술을 훔쳤을 수도 있으니까.”
“그건 말이 되지 않아, 보이.”
두 사람은 방벽 도시의 감시탑 쪽을 찾아 벽 둘레를 걸었다. 그러자 감시병으로 보이는 자를 발견할 수가 있었다. 그는 기존 인간들의 무기인 총을 사용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아니 아무런 무기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마법사인가?”
피터의 말에 하류는 고개를 흔들며 물었다.
“도대체 마법, 마법 하는데 그게 뭐야?”
“말 그대로 마법이지. 자연계의 힘을 이용하여 물리력을 행사하는 힘.”
“그딴게 존재할 리가 없잖아.”
“아니 옛날부터 존재했지만 과학이 발달함으로서 잊힌 힘이야. 하지만 마법의 힘을 깨닫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은 아닌데...”
“헛소리...”
피터의 말에 하류는 모르겠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거기 누구냐!”
감시병은 그들을 발견했다.
“아! 이곳에 인간에게 도움을 주는 인간이 아닌 자가 있다고 들었소!”
피터의 물음에 감시병은 한참을 그들을 노려보았다.
“내 말을 못 알아듣나 보다.”
피터는 고개를 절래 흔들었다.
-이곳에 인간에게 도움을 주는 인간이 아닌 자가 있나요?-
“이곳 말을 아는 거야?
하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정보는 어디서 들었나?-
-일전에 들렀던 방벽도시에서 들었어요!-
하류의 외침에 감시병은 그들을 계속해서 의심스러운 눈으로 쳐다보더니 빈손으로 마치 화살을 쥐듯 했다. 그러자 푸른빛으로 화살모양의 에너지가 형성되었다.
“역시 마법사로군.”
하류는 놀라고 말았다. 인간이 저런 능력을 쓰리라고는 전혀 생각도 못했기 때문이었다.
-공격하지 마요! 우리는 적이 아니에요!-
-네놈들이 몰록의 첩자인 줄 알게 뭐냐!-
하류는 한숨을 내쉬며 후드를 걷어내려 했다. 그러자 피터가 막아섰다.
“지금 네 정체를 밝혀서 좋을 게 없어.”
“몰록이 아니라는 것을 알리면 더 좋지 않을까?”
“과연 그럴까...”
하류는 후드를 걷어냈다 회색 머리카락이 드러났고 그 옆으로 하얗고 긴 귀가 나타났다. 경비병의 눈살이 약간 찌푸려졌다.
-잠깐 기다리시오.-
경비병의 모습이 사라졌다.
“너무 간단한데?”
피터의 말에 하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윽고 경비병의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두 사내에게 아무런 말없이 손짓했다. 그가 가리킨 곳은 이 방벽도시의 입구인 듯 보였다. 안에서 자급자족을 해야 하는 방벽도시의 특성상 입구는 필요 없다. 하지만 하류의 고향 방벽도시의 예를 봐서도 그렇듯 입구가 없을 수는 없다. 밖과의 연계가 아예 없을 수는 없으니 말이다.
입구에 도착하자 그 부분만 에너지 장벽이 사라졌다.
“으윽...”
키가 큰 피터의 등 부분이 약간 방벽에 닿아 치지직 소리를 냈다. 두 사람은 조심스럽게 입구를 열고 들어서자 그들의 눈에 들어 온 것은 넓은 논이었다. 논은 정확하게 사각형으로 잘 갖추어져 있었다. 듬성듬성 밭도 보이는 것이 식량을 자급자족하는 듯 했다. 이정도 크기라면 수십만 명은 족히 먹을 수 있을 정도였다. 그 정도로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그 논과 밭에서 많은 사람들이 일을 하고 있었다. 저 멀리서는 소와 돼지등도 보였다. 완벽한 농촌의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밖은 사막인데 이곳은 완전히 초원이로군. 이정도면 엄청난 사람들이 모여서 살 수 있겠어.”
피터의 말에 하류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순간 그들의 눈에 들어온 재래식 무기. 총이었다. 수많은 총구들이 그들의 머리를 향해 겨눠졌다.
-움직이면 쏘겠다.-
많은 사람들이 그들에게 총을 겨누며 서 있었다. 그중에는 석궁을 들고 있는 자들도 있었다.
“하하...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만 손을 들어야겠지?”
“그래 손을 들라는 말이야.”
피터는 너스레 좋게 웃으며 두 손을 들었다. 하류 역시 두 손을 들고 사방을 살폈다. 밭 주변으로 시체가 목이 걸려 널려 있는 것이 보였다.
-식량을 기르는 곳에 시체가 걸려 있는 것이 보기 좋지는 않네.-
하류의 비아냥거리며 물었다. 피터는 궁금증을 풀려 다시 물었다.
“저들의 말을 아는 거야?”
“응. 이건 한국의 말이야.”
경비병들 사이에서 수염을 보기 좋게 기른 노인이 비집고 나왔다.
-이것이 바로 자연의 순환이지. 사람도 죽으면 거름이 되고 그 거름은 이 땅을 비옥하게 만들지.-
노인의 말에 피터는 고개를 절래 흔들었다.
-그렇다고 시체를 걸어 놓는 건 말이 안 되죠.-
하류의 물음에 노인은 웃음을 보였다.
-우리말을 아는 샬록이라. 어디서 온 거냐?-
-난 샬록이지만 샬록이 아닙니다. 혹시 이곳은 샤일이라는 샬록과 몰록의 혼혈이 다스리는 곳입니까?-
하류의 말에 노인은 고개를 절래 흔들었다.
-그런 이름의 샬록은 없지. 자네는 왜 그 이름의 샬록을 찾는 겐가?-
-알 것 없지 않습니까. 우리는 이만 나가보겠습니다.-
하류는 피터에게 눈짓했다. 피터는 손을 내리며 하류의 뒤를 따랐다.
-멈춰라!-
노인이었다. 그의 목소리와 함께 하류와 피터의 코앞까지 총구가 겨눠졌다.
-네놈들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단 두 가지뿐이다. 이곳에서 노예가 되든지 아니면 저렇게 되던지.-
노인은 시체를 가리켰다. 피터는 침을 꼴깍 삼킨 후 나지막이 하류에게 말했다.
“우리가 힘을 좀 쓰면 이 사람들을 모두 죽일 수 있어. 그리고 도망치자.”
하류는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더 눈치를 보다가 시작하자고, 아저씨.”
-무슨 말을 주고받는지는 모르겠다마는 이 결정은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수호신인 천녀께서 오셔야 한다.-
노인의 입에서 천녀라는 말이 나오자 주변의 사람들이 두 손 모아 기도했다.
-이들을 감옥에 가둬라.-
총을 든 사람들이 피터와 하류를 향해 총구를 겨냥했다. 하지만 순순히 따라갈 두 사람이 아니었다. 하류가 손을 뻗자 나이프가 튀어 나왔고, 피터의 손에서는 붉은 화염이 맺혔다.
“비켜!”
피터가 먼저 뛰어 나갔다. 그러자 그는 아무런 힘도 못쓰고 풀썩하고 쓰러졌다. 당황한 하류는 피터의 등을 보았다. 그의 등에는 마취탄이 꽂혀 있었다.
“제기랄!”
피터는 총이 날아온 궤적의 끝을 바라보았다. 한 사내가 총을 겨누고 있었다. 장발을 곱게 묶은 사내였다. 아직도 하류를 겨누고 있었다.
하류는 빠르게 내달렸다. 일직선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사내를 향해 지그재그로 뛰었다. 사내는 조심스럽게 그를 겨누고 있지만 표적이 움직이니 짜증이 날만도 했다. 그의 근처까지 뛰어온 하류는 하늘로 솟구쳤다. 사내에게 내려치려 나이프를 높이 들었다. 내리치려는 찰나!
“크윽!!”
그의 몸이 공중에서 멈춰 버렸다. 사내는 그에게 손을 뻗고 있었고 손에서 푸른 기운이 일렁거렸다.
-어린 녀석이 굉장히 재빠르구나. 하지만 잠들어야겠다.-
그는 가차 없이 하류를 향해 마취총을 쏘았다.
검은 어둠이 짙게 내리깔리는 무거운 밤공기.
한 남자가 로브를 깊게 눌러 쓰고 걸어가고 있었다. 여느 몰록의 로브를 입고 있었지만 걸음걸이는 몰록의 절도 있는 걸음걸이가 아닌 급한 종종걸음이었다.
그는 뒤를 두리번거린다. 좌우를 살핀다. 전방을 조심스럽게 살핀다. 모든 방향을 급하게 살핀다.
그가 이동하는 곳은 거대한 저택이었다. 저택이라고 해도 샬록이나 인간의 저택처럼 화려하지 않았다. 그저 소박한 회색빛 네모난 건물이었다. 그 앞에는 두 명의 몰록 경비병이 하품을 하며 서 있었다.
사내는 조심스럽게 경비병이 없는 곳으로 둘러갔다. 익숙한 듯 저택의 담벼락에 나 있는 틈을 발견했고 그 안으로 들어갔다. 들어간 후에는 종종한 걸음으로 저택 뒤편의 조그마한 문을 향해 걸었다. 다행히도 이곳은 경비가 그렇게 단단한 곳은 되지 못했다.
사내는 그 문 앞에서 로브를 벗었다. 그는 샤일이었다. 그는 문 앞에서 눈을 가져다 댔다. 인간들이 사용한 동공인식시스템이었다.
-신원확인, 샤일.-
나무로 된 작은 문이 어울리지 않는 전자음과 함께 열렸다. 그는 안으로 들어섰다.
어두운 방안에는 촛불 하나만 켜져 있었다. 그 앞에는 중년의 몰록이 원탁에 앉아 있었다. 굳건한 입술과 갸름한 얼굴은 미남형으로 보였다.
“아버지.”
그는 샤일의 아버지였던 것이다. 하지만 그는 샤일과는 달리 미소 따위는 얼굴에 없었다.
“왔느냐.”
샤일은 옅은 미소와 함께 목례 한 후 자리에 앉았다.
“그래 그곳에서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었느냐?”
“지금 이대로 샬록을 친다면 샬록은 무너질 것입니다,”
샤일의 말에 그의 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였다.
“앉아라.”
자리에 앉은 샤일은 질문했다.
“누굽니까.”
“누구 말이냐.”
“왕 말입니다.”
“불경스럽구나.”
아버지는 차를 마셨다. 그의 얼굴에는 약간의 노기가 담겨 있는 듯 했다.
“혼혈입니다.”
“그런대?”
“몰록은 혈통을 중시하지 않습니까? 샬록과 몰록의 혼혈이라니요.”
“뿐만이 아니다. 인간의 혼혈이기도 하다.”
인간의 혼혈이라는 말에 눈을 크게 떴다.
“그럴 수가 있는 겁니까?”
“너의 경우도 있지 않느냐.”
샤일은 침묵했다. 헤어진 자신의 아이들이 생각나는 듯 했다. 그러고 보니 왕도 어디선가 본 듯 했다.
“떠나라.”
“그럴 수 없습니다.”
“넌 샬록을 증오 하는 만큼 우리 몰록도 증오하지 않느냐?”
“국사를 맡고 싶습니다.”
그의 아버지의 눈이 크게 뜨였다. 국사라니... 수천수만의 샬록의 피를 묻힌 그가 왕의 스승인 국사를?
“비난을 받을 것이다. 비난의 정도를 넘어설 것이다.”
“그런 것 따위는 신경 쓰지 않습니다.”
“허락할 수 없다. 샤이칸이 허락할 리가 없다.”
“당신은 귀족 중에서도 최고 귀족이 아닙니까? 당신의 힘이라면 다른 귀족들에게도 입김이 들어가지 않겠습니까? 샤이칸도 귀족들의 뜻을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을 테니까요.”
그의 아버지는 눈을 감았다. 한참동안을 생각하는 듯 했다. 촛불이 움직인다. 허나 샤일은 움직이지 않는다. 팔짱을 낀 채 그저 자신의 아버지만 바라보고 있었다.
“한번 움직여는 보겠다. 하지만 기대는 말아라.”
샤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만 물러갑니다.”샤일은 인사도 제대로 하지 않고 밖으로 나갔다. 그의 아버지는 한참을 나간 문을 바라보았다.
“징그러운 놈.”
혀를 끌끌 찼다. 뒤이어 뒤쪽에서 검은 옷을 입은 몰록이 모습을 드러냈다. 얼굴은 복면으로 가리고 있어 누군지 알 수 없었다.
“명령을 내리겠다. 샤일이 국사가 되면 기회를 봐서 샤일과 함께 왕도 죽여라.”
복면인 고개를 끄덕였다.
“수만의 몰록의 피를 묻힌 놈이... 뭐 국사?”
그의 아비는 콧방귀를 뀌었다.
샤일은 침대에 누워 있었다. 이미 날이 밝았는데도 계속 누워있다. 밤새 잠도 자지 않고 저 모양이었다. 무슨 생각이 그리 많은지 로만에게도 말을 아꼈다. 답답한 로만은 계속해서 창밖만 바라보고 있었다. 아주 잘 정돈은 되어 있지만 경직돼 보이는 몰록의 건물들이 더욱더 그를 답답하게 만들었다.
똑똑하며 노크소리가 들려왔다. 샤일은 그제야 몸을 일으켰다. 로만은 문 앞으로 다가가 물었다.
“누구시오.”
“저희는 왕명을 받들어 왔습니다.”
로만의 눈이 크게 뜨여졌다. 무슨 말이야.
“이게 무슨 일이지?”
샤일은 비슬비슬 일어나 문 앞으로 다가갔다.
“무슨 말인가, 샤일!”
그는 로만을 무시한 채 문을 열었다. 회색 망토를 두른 두 사람이 그의 앞으로 나아왔다. 그들의 손에는 왕의 칙서가 들려 있었다. 둥근 황금 통에 든 칙서를 샤일이 받아 들었다.
“칙서의 내용은?”
샤일의 물음에 그들은 조용히 입을 열었다.
“폐하의 국사로 임명하는 내용입니다.”
두 사람의 말에 로만의 눈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커졌다.
“이게 무슨 말인가! 샬록에게 몰록의 국사를 맡기다니!!!”
“나의 반쪽은 몰록이기도 하지 않은가.”
샤일은 칙서가 든 황금 통을 뒤로 던졌다. 그 불경한 모습에 두 사람은 눈살을 찌푸렸다.
“받아들인다고 가서 전해.”
로만은 더욱더 흥분하여 얼굴이 붉어졌다.
“무슨 소린가!”
그를 무시한 채 샤일은 손을 휘휘 저었다. 그러자 두 사람은 목례하고 사라졌다.
“무슨 소린가, 샤일! 몰록의 국사라니!!”
로만의 물음에 샤일은 묵묵부답이었다. 로만의 몸에서 오오라가 이글이글 뿜어져 나왔다.
“무슨 짓인가, 로만.”
“자네가 몰록의 국사가 된다면 내가 자네를 죽이겠네.”
손 주위로 몽골몽골 물방울이 맺히며 손을 모두 감싸고 있었다.
“자네 진심인가?”
“진심이야!!”
로만은 푸른 물덩이를 빠르게 집어 던졌다. 빠르게 나아가던 물덩이는 확 퍼지며 자잘한 물방울이 되어 쏜살같이 날아갔다. 허나 샤일은 손쉽게 피했다. 날아가던 물방울은 벽에 파바박 소리를 내며 박혔다.
“자네는 나를 이기지 못해.”
“어련 하시겠나! 피의 날개 한이니까!”
로만은 빠르게 그를 향해 들려 들었다. 그의 손에는 물방울이 맺혀 푸른 검의 형상으로 맺혀갔다.
“어리석은 사람!”
샤일이 손을 뻗었다. 순간 로만의 움직임이 멈췄다. 동시에 그의 몸은 바닥에 납작 엎드려졌다. 바닥이 쿠직쿠직 하는 소리와 함께 둥글게 꺼졌다.
“크윽... 중력장...”“흥분하지 말고 잘 듣게. 난 이곳에서 몰록의 정보를 입수하기 위해 왔네. 그러기 위해서 아버지의 위치를 이용했지.”
“자네를... 큭... 어떻게 믿지?”
“자네의 친구니까.”
샤일이 눈을 부릅뜨자 바닥으로 완전히 눌려 있던 로만의 몸이 조금씩 움찔거렸다. 서서히 일어나는 로만. 그는 뼈마디가 시린 듯 매만졌다.
“역시 강골이군. 보통의 샬록이었다면 뼈가 모두 부서졌을 게야.”
“이렇게 나를 공격한 자네를 어떻게 믿어야 하나?”
“공격은 자네가 먼저 했네.”
로만은 피식 웃었다. 샤일 역시 피식 웃었다.
“모든 것이 이야기가 된 것인가?”
샤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꼬장꼬장한 귀족연합이 인정해 주던가?”
다시 한 번 샤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난 이곳에 있을 이유가 없겠군. 지금이라도 돌아가겠네.”
“그래.”
“언제 다시 볼 수 있겠는가?”
“때가 되면.”
샤일은 가방을 쌌다. 짐이라고 해도 별 것이 없었다. 단출한 가방을 훌쩍 둘러맨 그는 로만을 바라보았다.
“내가 먼저 가봐야겠어. 아버지의 저택으로 돌아가야지.”
로만은 고개를 끄덕였다.
밖으로 나오는 샤일의 얼굴에는 웃음기가 사라졌다.
“다시 만나면 자네와 난 적이 되어 있겠지. 잘 가게 나의 친구여.”
샤일의 발걸음이 향한 곳은 왕의 거처였다. 거대한 거성을 향해 발걸음을 내딛는 동안 많은 몰록의 눈초리가 뜨겁게 다가왔다.
“무리도 아니지.”
머리를 긁적이는 그에게로 누군가가 다가왔다.
“샤일 공이신가요?”
몰록답지 않게 푸른 망토를 착용한 그는 꽤나 젊어 보이는 자였다. 얼굴의 3분의 1정도를 가린 금빛 가면을 쓰고 있는 분홍빛 머리의 그는 꽤나 화려해 보였다.
“자네는?”
“저는 유린입니다.”
“몰록의 사내치고는 화려하군.”
“젊은 세대니까요.”
웃고 있는 얼굴과는 달리 그의 눈빛에는 살기가 감돌았다. 그것을 느낀 샤일은 주먹을 꼭 쥐었다.
“누가 보냈나?”
“이런, 이런... 국사어르신께 제가 무뢰를 범했군요. 당신의 과거의 화려한 이력이 저의 무인의 기운을 불러 오고 있습니다. 죄송하게 됐습니다.”
“누가 보냈나 물었다.”
“저는 샤이칸님께서 보내셨습니다.”
샤이칸이라는 말에 샤일은 웃음을 보였다.
“화친의 증거인가?”
“그런 셈이죠. 당신의 호위를 위해 보내셨습니다.”
“호위? 이 나를?”
유린은 다시금 살기를 담은 웃음을 보이며 주변을 보며 말했다.
“당신의 적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많으니까요.”
“그렇지. 많이 신경 쓰였다.”
두 사내는 걸음을 옮겼다.
왕의 거성에 당도한 그들은 안으로 들어섰다. 거성 건물 안의 또 다른 작은 건물인 왕의 거처에 도착한 그들은 옷매무새를 정돈하였다.
“자네는 안 들어가나?”
“저는 아직 그 안으로 들어 설 수 있는 자가 아닙니다.”
샤일은 고개를 끄덕이며 안으로 들어섰다.
“으응?”
안으로 들어서자 어둠이 그를 맞이했다. 순간 그의 눈으로 검은 인영들이 휙휙 지나가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그의 얼굴을 스치며 붉은 피가 꽃잎처럼 공중으로 솟구쳤다.
“큭!”
본능적으로 그는 손을 뻗었다. 그의 손에 움켜진 것은 몰록이었다. 그는 그의 목덜미를 살짝 쳐서 기절 시킨 다음 아무렇게나 집어 던졌다.
“역시 피의 날개 한인가?”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샤이칸...”
실내에 불이 켜졌다. 저 앞으로 왕이 앉아 있는 옥좌가 보였다. 그 옆에는 당연하다는 듯 샤이칸이 서 있었다.
“녹슬었을 줄 알았는데 아직 한창이군, 샤일.”
“무인의 피는 늙어도 끓어오르니까.”
“알고 있겠지? 우리 몰록의 국사는 왕의 도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다. 왕의 강함을 가르치는 것이다. 과거의 자네는 강했다. 지금의 자네도 예전만큼 강한지 시험해야겠다.”
“차가운 살육자 샤이칸의 입에서 말이 많아졌군. 나이가 들어서 그런가? 자네의 힘부터 점검해보지 그래?”
샤일의 도발에 샤이칸의 미간이 찌푸려지며 눈 아래가 부들부들 떨렸다. 하지만 참아냈다. 이상하게도 그는 샤일의 도발만은 그냥 받아 넘길 수가 없었다.
“그래서 어쩌겠다는 거지?”
“살아남아라. 단.”
“단?”
“몸에 상처가 하나도 없어야 한다.”
샤이칸이 두 손을 앞으로 뻗자 바닥에 두 개의 주홍빛 둥근 원이 그려졌다. 점차 빛은 위로 솟아오르며 기둥이 되었다. 기둥이 사라지자 두 개의 커다란 석상과도 같은 육중한 무엇인가가 나타났다.
“이 따위 인형을 지금 상대하라는 거냐?”
“훗... 이 따위라는 말이 나올 상대는 아니다.”
샤일의 두 손이 푸른 뇌전으로 이글거렸다. 금방이라도 무언가를 박살 낼 것만 같았다. 샤일은 빠르게 내달리다 공중으로 솟구쳐 올랐다. 그의 손에서 이글거리는 뇌전은 사방으로 스파크를 뿌리며 한층 더 강렬해졌다.
“맞아라!”
순간 석상의 몸에서 촉수가 뿜어져 나왔다. 수십 개의 촉수는 금속성이었으나 유연성은 마치 고무 같았다. 휘리 소리와 함께 내쏘진 푸른 뇌전을 스치고 샤일을 향해 날아들었다. 그는 촉수를 공중에서 몸을 틀어 피하고 착지했다. 하지만 자세를 잡기도 전에 그를 향해 석상의 커다란 주먹이 날아왔다.
그는 손 뻗어 주먹을 막아냈다. 무언가 벽에 부딪친 것처럼 허공에서 주먹이 멈췄다. 하지만 주먹의 충격파로 인해 샤일은 뒤로 물러났다.
“뭐가 이래...”
그는 충격으로 저려오는 한손을 휘히저었다.
“뇌전에도 충격이 없다니.”
샤일의 혼잣말에 샤이칸이 말했다.
“뇌전이 통하지 않는 재질이니까.”
샤일은 웃음을 머금었다. 그의 웃고 있는 눈이 한층 더 날카로워졌다.
“뇌전이 통하지 않는 재질이란 없어!”
그가 눈을 크게 뜨자 석상의 움직임이 멈췄다. 점점 아래로 엎드려지는 석상! 바닥은 쿠지직 소리를 내며 둥글게 내려앉았다.
“꿇어라!!”
그의 외침과 함께 석상은 무릎을 꿇었다. 동시에 바닥은 더욱더 크게 내려앉았다. 샤일의 손에서 이글거리는 푸른 뇌전은 검처럼 날카롭게 형성화 되었다.
순식간이었다. 그리고 예리했다. 그의 뇌전의 검은 빠르게 2기의 석상의 머리와 팔다리를 잘랐다. 그대로 ‘쿵’소리를 내며 떨어지는 석상의 몸덩이. 몸덩이는 산산조각 났다.
샤이칸의 눈이 커졌다. 순식간에 모든 것이 끝났다. 저 석상의 힘은 몰록의 전사들 보다 한층 강한 힘을 지니고 있다. 그런 석상을 순식간에 쓰러트렸다. 그의 힘은 신마대전 때에 못지않았다. 아니. 더욱더 강해졌다.
“이정도면 왕의 스승으로 어느 정도 인정할 수 있겠나?”
샤일이 손을 한번 휘젓자 푸른 뇌전의 검이 사라졌다. 눈에는 샤이칸을 압도할 정도의 기운에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그 정도면 되겠군.”
샤이칸은 떨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섭정이여. 그렇다면 허락한 것인가?”
그는 다시 한번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는 이제 이 나라의 국사일세. 허나 국사 이외의 다른 임무도 있네.”
“무엇인가?”
“왕의 호위를 맡아줄 수 있겠나?”
“호위?”
샤이칸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의 귀족들은 왕의 존재를 달가워하지 않는다네. 15년이라는 세월이 우리 몰록에게는 그리 긴 시간이 아니지. 하지만 탐욕에 찌든 자들에게는 더 짧은 시간이야. 귀족들은 왕이 없는 당시의 달콤함을 잊지 못해.”
“그래서?”
“왕을 시해하려 하지.”
“근거는?”
“없다.”
샤일은 피식 웃음을 보였다.
“섭정자의 두려움 아닌가? 왕이 없으면 섭정자의 위치도 흔들릴 테니까.”
“어떻게 생각해도 좋다. 하지만 왕만은 꼭 지켜주길 바란다.”
“좋아.”
샤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잘 정리된 상자들처럼 일사불란한 회색빛 건물들. 그 아래로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옷차림은 모두 연한 갈색의 로브로 통일 되어 있었다. 마치 인간의 수도사들처럼 경건한 표정과 발걸음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그들의 머리카락 색깔은 절제된 행동거지와는 어울리지 않는 아름다운 총천연색이었다. 그 머리카락 사이를 비집고 나온 양옆의 뿔은 양의 것과도 같았고, 사슴의 것과도 같았고, 양의 것과도 같았다. 저마다 제각각의 모양을 하고 있었다. 자유분방한 모습의 샬록과는 많이 다른 경직된 모습의 이 사람들이 몰록이었다.
이곳은 몰록의 수도, 옛 미국이라 불리던 패권국가의 경제 중심지가 자리했던 곳이다. 지금의 이름은 카로이나. 저 멀리 보이는 횃불을 든 여성 우상의 무너져 내린 모습이 이곳의 옛 이름을 짐작케 했다. 남아 있는 것은 그것뿐. 인간이 있을 때의 자취는 모조리 사라지고 검소하고 절제된 몰록의 건물들만이 즐비한 곳이 되었다.
이곳에 들어선 한무리로 인해 조용하던 몰록들의 조금씩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그들은 하얀 옷을 입고 하얀 머리카락을 지닌 온통 하얀 샬록들이었다. 휘장이 새겨진 기다란 깃발을 들고 오는 것으로 보아 사절단인 듯 했다. 그들의 맨 앞에 두 사내는 예물을 들고 있었다. 한 사내는 우직한 모습의 로만이었고, 또 다른 사내는 샬록과 몰록의 혼혈인 샤일이었다.
샤일의 모습을 확인한 몰록들은 극도의 거부감을 드러냈다. 어찌 그들의 그의 얼굴을 잊을 수 있겠는가? 몰록의 피를 지녔음에도 수많은 몰록들의 살해한 악귀였다. 주먹을 쥐고 금방이라도 달려 들 것만 같은 몰록들이 많이 보였다. 하지만 샤일은 괴이치 않고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겼다.
“역시 몰록들에게 자네의 인기는 아주 장난이 아니로군.”
“이래봬도 인기인이니까.”
어깨를 한번 들썩인 샤일은 하늘을 앞을 바라보았다. 엄청난 크기를 자랑하는 건물이 있었다. 뾰족한 지붕이 인상적인 건물은 7층 이상이고 주변 건물 수십여 개는 붙여 놓은 듯 한 넓이의 건물이었다. 단층의 건물을 즐겨 짓는 몰록의 건물과는 위용부터가 달랐다. 허나 다른 몰록의 건물과 마찬가지로 회색이었고 장식은 없었다.
이곳은 몰록의 왕의 성이다. 신마전쟁 이후 사라진 왕이었지만 다시 강림할 왕을 위해 건축했다. 그 덕분에 새로운 왕의 재목이 등장한 지금 이 성은 그를 위한 장소로 잘 이용되고 있었다.
장정의 키 3배는 되어 보이는 높이의 커다란 문이 둔탁한 소리를 내며 열렸다. 은은한 향취와 함께 관복을 잘 차려 입은 몰록의 재상들이 나왔다. 관복이라고 해봤자 화려하지 않은 자수를 넣고 망토를 두른 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가슴에 몰록의 뿔로 조각한 브로치가 달려 있었다. 그것만큼은 보석장식이 되어 있어 꽤 사치품으로 보였다.
“어서 오시오, 샬록의 사자들이여.”
그들의 환영은 거부감을 보이지도 않았고 그저 담담했다. 이 모습에 로만은 고개 숙여 인사했다. 샤일 역시 고개 숙였다. 몰록의 재상들은 안으로 그들을 안내했다.
“조심해야 하지 않겠나? 복병이 숨어 있을 수도 있으니.”
“몰록은 그렇게 비겁하지는 않네.”
그의 말 대로였다. 아주 긴 복도를 향하는 동안 몰록의 복병은 보이지 않았다. 그저 넓은 복도와 홀을 지나다니는 몰록의 귀족들만 보일 뿐이었다. 그들 역시 약간의 놀람은 있었으나 담담하게 샬록의 사절단을 맞이했다.
길다란 복도를 십여 분 정도 걸어서 나가니 이제는 정원이 눈에 들어왔다. 건물 안의 정원이라는 특수한 모습에 로만 휘하 많은 샬록들이 신기한 듯 두리번거렸다. 건물 안에 있다 뿐 화려한 꽃은 없었고, 그저 푸른 나무들이 여기저기 심겨져 있었다. 드문드문 보이는 과실과 채소류들이 이곳의 용도는 정원뿐만이 아닌 실용적인 측면도 함께 있음을 보여주었다.
저 멀리서 곡괭이질을 하는 몰록 한명이 보였다. 눈가에 큰 상처가 있는 푸른 머리의 몰록 사내였다. 그는 묵묵히 괭이질을 하다 사절단을 바라보았다. 순간 그의 양미간이 찌푸려졌다. 눈에는 살기가 그득했다.
“피의 날개 한인가?”
샤일을 아는 듯 바라보는 푸른 머리의 사내는 샤이칸이었다.
“이 눈의 상처... 기억하고 있나?”
샤이칸의 말에 샤일은 고개를 절래 흔들었다.
“하도 많은 몰록들을 베어서 그런 상처 따위는 기억하지 못합니다. 당신은 누구죠?”
샤일의 도발에 그는 주먹을 꼭 쥐었다. 금방이라도 달려들 듯 보였지만 그는 참고 또 인내했다. 그는 지금 사절단의 신분으로 와 있다. 공격을 가하면 몰록에 큰 해를 끼치는 일이 될 것이다.
샤일과 사절단은 몰록의 재상들과 함께 앞으로 나아갔다. 뒤통수가 따끔 거릴 정도의 샤이칸의 살기가 있었지만 그는 괴이치 않았다.
“심한 장난이군. 저자는 화를 잘 참지 못하는 자가 아닌가.”
“하지만 화를 낼 때와 내지 않을 때를 잘 알고 있는 사내지. 불같지만 얼음같아.”
샤일의 칭찬에 로만은 고개를 절래 흔들었다.
정원이 지나가지 이제는 조금은 화려하게 보석과 대리석으로 장식된 건물 안의 건물이 보였다. 그곳에 당도한 재상들은 안으로 안내했다.
안으로 들어서자 많은 몰록의 대신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들은 사절단에게 예를 갖춰 인사했다. 그들의 중심에는 옥좌에 앉은 어린 왕이 있었다. 그는 완전한 몰록 같지는 않았다. 염색이 빠졌는지 머리끝이 검은색이었지만 머리는 샬록처럼 하얀색이었다. 그리고 양 옆으로 조그마한 뿔이 나 있었다.
샤일은 예를 갖추지도 않고 왕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왕은 그런 그의 모습을 무미건조하게 바라보았다. 샬록과 몰록의 혼혈은 흔한 일이 아니다. 만약 샬록과 몰록이 사랑에 빠지면 그들은 가차 없이 죽임을 당하고, 만약 아이가 있다면 그 아이마저도 죽인다. 샤일은 특별한 경우로 어머니는 샬록의 여사제였고, 친부는 몰록의 좌현왕이라는 직위로 인해 용서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아주 이례적인 것으로 세간의 질타를 받는 아주 특별한 사건이었다. 그런 경우가 아닌데도 혼혈이 살아남고 또한 몰록의 왕이 혼혈이라니 이건 말이 되지 않는다.
“폐하도 혼혈이군요.”
샤일의 말에 대신들이 술렁였다. 인사로 예를 갖추기도 전일뿐더러, 자신들의 왕에게 혼혈이라는 말을 함부로 하는 그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저도 혼혈입니다. 이중에 제 친척도 있지요.”
왕의 얼굴에는 표정이 없었다. 그저 물끄러미 그를 바라볼 뿐이었다.
“아, 이런. 예를 갖춥니다. 저는 샬록의 사절으로 온 샤일 파인나 한입니다.”
“저는 로만 베르제르 카이만입니다.”
두 사람이 모록의 양을 향해 반무릎을 꿇고 인사했다. 뒤쪽의 사절단들 역시 무릎을 꿇었다.
“무슨 일로 오셨소.”
뒤쪽에서 인간이 쓰는 밀짚모자와 고무장화를 신은 농부의 차림의 샤이칸이 성큼성큼 다가왔다. 그의 손에는 아직도 흙이 묻어 있었다.
“인간들은 이런 복장으로 땅을 가꾸더군. 생각보다 시원하고 발은 편하지.”
그는 옷의 묻은 흙먼지를 밀짚모자로 탁탁 털어내고 옥좌의 옆으로 나아갔다. 옥좌의 오른편에 선 그는 몰록의 섭정의 의미였다.
섭정자 샤이칸. 그는 사분오열된 몰록을 통일하고 왕이 올 때까지 다스린 불세출의 영웅이다. 마신전쟁 때에도 큰 공을 세운 전쟁영웅이기도 했다.
“섭정이라는 뜻입니까?”
샤일의 물음에 샤이칸은 콧방귀를 끼었다.
“섭정의 옷차림은 아니로군요. 격이 없는 것입니까, 예의가 없는 것입니까?”
샤일의 도발에 샤이칸의 얼굴에서 노기가 가득했다. 하지만 자리가 자리이니만큼 표시를 내지 않으려 노력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이 편지를 전하러 왔습니다.”
샤일은 사절단의 한명에게서 원통의 상자를 받아 들었다. 금으로 장식된 아주 호화로운 것이었다. 그것을 샤일이 직접 당당히 걸어가 왕에게 내밀었다. 샤이칸은 그것을 받아들기 위해 손을 뻗었다. 하지만 샤일은 그에게 주지 않으려 상자를 다시 자신의 품으로 끌어 당겼다. 샤이칸의 손은 민망하게 허공을 갈랐고 왕은 ‘풋’하고 웃음을 보였다.
“괜찮습니다. 저는 몰록의 글을 읽을 줄 몰라요. 섭정이 읽어도 좋습니다.”
그러자 샤일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폐하께서 직접 받아들이고서 섭정자에게 주든 바보에게 주든 하십시오.”
다시금 웃음을 보이는 왕은 천진한 인간의 모습이었다.
“그렇게 하지요.”
왕은 다시금 무미건조한 모습을 보이며 샤이칸에게 원통 상자를 내밀었다. 샤이칸은 그것을 받아 쥐고는 안에 든 편지를 꺼내 들었다.
“화친을 맺자는 것이오? 이미 정전 협정이 들어간 상태에서 이런 의미 없는 편지를 보낸 연유가 뭐요?”
“우리의 의지를 다시금 보여드리기 위함이죠. 새로 등극하신 폐하의 용안도 한번 뵙고 오라는 귀족연맹의 분부가 있었습니다.”
샤일의 대답에 샤이칸은 아무렇게나 다시 편지를 원통에 집어넣고 샤일에게 던졌다. 그것을 받아 쥔 그의 얼굴에는 웃음기가 사라졌다. 아무리 의미 없는 내용의 편지라지만 사절단의 편지를 마음대로 하는 그의 모습에서 화가 단단히 난 모양이었다. 하지만 이내 다시 속을 알 수 없는 눈감는 웃음을 보이며 말했다.
“이정도면 우리의 의지를 잘 전달했다 생각합니다.”
샤일의 말에 샤이칸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절단을 위한 숙소가 마련되었소. 재상 중 한명이 안내할 것이오.”
샤일은 다시금 왕에게 예를 갖추어 인사하고 뒤로 물러났다. 샤이칸은 계속해서 그를 노려보았다.
그들이 이동한 곳은 이 성의 중앙에 위치한 아름다운 궁전이었다. 하얀 대리석의 벽으로 이어진 것은 여느 샬록의 건물과 같았다. 하지만 그 높이는 보통의 저택의 외벽의 두배는 되는 듯 했다. 안으로 들어서자 대략 스무걸음 앞에 또 다시 벽이 드러났다.
아름다운 향기가 그득했고, 모든 벽면과 바닥이 보석과 금은으로 장식되어 빛나고 있었다. 사방에서는 빛의 신 ‘샬로’를 찬미하는 소리로 가득했다. 마치 천국이 있다면 이런 모습을 하고 있으리라.
샤일과 로만은 내벽의 입구에 섰다. 그러자 하얀 로브를 눌러쓴 두명의 문지기가 홀연히 모습을 드러냈다. 한참을 두 사람을 바라보던 그들은 조용히 읊조렸다.
“소속과 이름을 밝히시오.”
그들의 로만이 먼저 대답했다.
“카이만가(家)의 ‘로만 베르제르 카이만’.”“소라완가의 ‘샤일 파인나 한’입니다.”
로브의 문지기들의 얼굴은 볼 수 없었으나 동요하는 듯 한 눈빛이 느껴졌다.
“당신이 바로 피의 날개 한이십니까?”
샤일은 대답을 대신해 옅은 미소만 보였다. 그들이 감탄하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일종의 경외심인 듯 했다. 그들은 황급히 안으로 인도했고 두사람은 손쉽게 안으로 들어섰다.
“역시 신마대전의 영웅 샤일 파인나 한 답군.”
샤일은 입가에 미소를 띠며 말했다.
“피의 날개 한... 이라...”
씁쓸한 웃음이었다.
내벽 안은 요상사리만치 검소했다. 수수하고 화려하지 않은 수목의 정원이 있었고, 아주 조그마한 오두막이 있을 뿐이었다. 아마 로만 같은 사나이 서너명이면 꽉 찰 크기였다. 게다가 굉장히 낡아 여기저기 박아놓은 못도 빠져 나오고, 지붕은 반쯤 허물어져 있었다.
두 사내는 정원을 지나 오두막으로 발을 들였다. 안으로 들어서자 밖과는 달랐다. 굉장히 넓은 홀이 있었다. 장식 없이 수수한 것은 역시 마찬가지였지만 소박한 미가 엿보이는 그런 하얀 공간이었다. 그 중심에는 원탁이 놓여 있었다. 그곳에는 다섯명의 중년 사내들이 로브를 쓴 채 앉아 있었다.
“5대가문의 수장들에게 로만 베르제르 카이만 인사 올립니다.”
로만이 오른쪽 주먹을 심장에 가져가며 인사했다. 샤일 역시 뒤따라 인사했다.
“어서들 오게나. 나 소라완의 수장 ‘카이제’, 그대들의 환영한다.”
입구와 마주한 자리의 온화한 인상의 중년 사내가 인사에 화답했다. 그는 샤일이 속한 귀족가문인 카이제의 수장. 한마디로 샤일의 외할아버지였다.
“저를 부르신 목적이 무엇인지요.”
샤일의 단도직입적인 물음에 카이제는 웃음을 보였다.
“네 녀석 성격은 여전하구나.”
“이곳은 귀족들의 장. 사사로운 이야기는 나중에 하시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외조부님.”
“남들을 가르치려는 성격도 여전하군.”
차가운 인상의 다른 수장이 인상을 찌푸렸다.
“미안하네, 융베르. 내가 손주녀석 교육을 잘 못시켜서 그러네.”
융베르라 불린 사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단도직입적으로 이야기하마.”
모두의 시선이 카이제를 향했다. 그는 환한 웃음을 지우지 않고 그의 손자에게 말했다.
“몰록의 수도에 다녀오겠나?”
로만의 얼굴이 굳었다. 샤일의 웃고 있는 눈 역시 날카롭게 변했다.
“조부님. 제가 몰록을 싫어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몰록을 싫어하는 것은 우리도 마찬가지지.”
카이제의 말에 샤일은 씁쓸한 웃음을 보였다.
“그래서 제가 몰록에게 가서 뭘 어떻게 해야 하죠?”
“이 편지를 전해주고 오너라..”
명령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로만의 얼굴은 크게 격양이 되었다.
“편지 하나 때문에 신마대전의 영웅을 희생 시키시겠다는 겁니까?”
“흥분하지 마라. 로만. 누구도 희생되지 않는다.”
로만만큼이나 그보다 더 우직하게 생긴 한 사내가 나섰다. 그는 로만의 아버지 카이만가의 수장 페트로였다.
“편지를 보내는 것이 이번 일의 주목적이 아니니라.”
“그렇다면?”
다섯 귀족대표 모두 숨조차 멈춘 듯 고요했다. 시간이 멈춘 듯 모둔 이가 뒤척임조차 없었다. 이 답답한 침묵은 길게 지속되었다. 로만은 목 위로 올라온 카라를 잡아당기며 침을 꼴깍 삼켰다.
“주목적이 무엇입니까?”
답답한 로만의 물음에도 장로들은 침묵을 지켰다.
“왕이 나타났습니까?”
샤일의 물음에 그의 조부 카이제가 담담하게 대답했다.
“그렇게 됐군. 왕의 역량을 가늠하고 오너라.”
“그릇을 가늠하라는 말씀이십니까?”
“말하자면 그렇지.”
“하지만, 아시지 않습니까? 제 손에는 수만의 몰록의 피가 묻어 있다는 것을.”
조부의 웃음과 함께 이야기 했다.
“알고 있다만. 너의 몸에 흐르는 피의 반은 몰록의 것이 아니냐.”
샤일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몰록은 옛일을 잊지 않는다. 복수는 꼭 한다. 그런 자들이 몰록의 피를 이어받았고 그를 가만히 내버려 둘리는 없었다.
“알겠습니다. 기꺼이 장로들의 뜻을 받들어 모시겠습니다.”
그는 오른쪽 주먹을 심장에 끌어당겨 보였다. 그의 대답에 로만의 인상이 씁쓸히 굳어갔다.
“이제 그만 가 봐도 된다.”
두 사람은 장로들에게 다시 한번 오른쪽 주먹을 가슴에 끌어당겨 인사했다.
밖으로 나온 두 사람은 한참이 말이 없었다. 로만은 답답한 듯 한숨만 내쉬고 있었다.
“혼자 갈 건가?”
로만은 답답함을 깨트리기 위해 물었다. 그의 물음에 샤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곳은 사지야.”
“물론. 하지만 둘이 가도 위험해. 그곳은 적들 천지니까.”
그의 속을 알 수 없는 눈웃음. 로만은 심기가 불편한 듯 헛기침을 계속 해댔다.
“같이 갈 거네.”
샤일은 무슨 뜻이냐는 듯 로만을 바라보았다.
“자네 말대로 그곳은 적들 천지니까.”
그의 우직한 말에 샤일은 풋하고 웃음을 보였다.
“피의 날개 한을 무시하는 겐가 지금?”
“아니. 친구를 걱정하는 거네.”
그의 대답에 샤일은 진지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걸리적거리면 죽여 버리겠네.”
“내 몸은 내가 알아서 할 테니 걱정 말게나.”
로만은 자신만만하게 가슴을 탕탕 쳤다.
Chapter.1 샬록의 도시.
1.
하늘을 바라보며 슬쩍 웃음을 보이는 한 사내.
샬록처럼 하얀 깃털이 뒤덮인 큰 귀가 있지만, 머리카락은 백색이 아닌 몰록처럼 아쿠아마린빛이었다. 이색적인 특징을 모두 가진 이 사내는 창가에 기대어 앉아 있었다. 속을 알 수 없는 그의 눈웃음. 눈동자가 보이지 않는 그의 웃음 묘하게 스산해 보이기도 했다.
“무엇이 그리 즐거우신가.”
그의 뒤에 서 있는 건장한 샬록의 사내.
“아, 로만.”
로만이라 불린 사내는 키도 일반 샬록들보다 머리하나 더 크고 근육도 잡혀 있는 것이 일반적인 샬록과는 달리 남성적 아름다움이 가득했다.
“이렇게 하늘이 아름다우니 즐겁지 아니한가? 보게나. 우리가 살고 있던 케라토이나의 하늘빛과는 다른 저 푸른 하늘을.”
이색적인 샬록 사내의 말에 로만은 고개를 절래 흔들었다.
“벌써 십수년을 바라보았네.”
무뚝뚝한 로만의 말에 아쿠아마린빛 머리의 샬록은 어깨를 한번 들썩이며 코웃음을 한번 보였다. 로만은 한심한 듯 그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샤일, 자네는 샬록과 몰록의 혼혈이네.”
“그래서?”
이렇게 가만히 있지 말고 귀족들의 환심을 사야하지 않나!“
“그런데?”
샤일의 장난스런 질문에 로만의 이마에 핏발이 서렸다. 금방이라도 화가 폭발할 듯 보였다.
“자네 외조부님의 공로가 아니면!!!”
화가 폭발한 듯 소리쳤지만 이내 잠잠히 감정을 숨기고 말을 이었다.
“이곳에 지낼 수도 없었을 것 아닌가.”
“난 그런 것에 관심이 없네 그려.”
샤일은 환하게 웃으며 그를 바라보았다.
“우리 샬록도 늙네. 자네 외조부님의 수명도 영원하지도 않네.”
“오늘따라 말이 많구만, 로만.”
로만은 고개를 절래 흔들었다. 도무지 말이 통하지 않는 벽과 같은 샤일의 모습에 그는 답답하고 또 답답했다. 그러던 로만의 눈이 커졌다.
“인간의 방벽도시는 또 갔다 왔는가?”
샤일은 놀랍다는 듯 눈을 크게 뜨고 물었다.
“어찌 아는 겐가?”
“자네의 몸에서 짙게 내뿜는 벌레들의 향취가 다 말해주고 있네.”
“벌레라니. 그들도 생명이네.”
눈동자가 보이지 않게 반쯤 감은 그의 눈에 약간의 살기가 흘렀다.
“아아... 실수했네.”
로만은 그의 살기에 눌린 듯 고개 숙여 사과했다.
“하지만 자네의 그 괴벽이 귀족들에게는 안 좋은 모습으로 비춰지는 것을 알아두게나.”
“그런 것 따위는 신경 쓰지 않는다 하지 않았나?”
샤일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네는 왜 나를 따르는 것이지?”
샤일은 사과 하나를 손에 쥐고 창문을 훌쩍 뛰어 넘었다.
“아니... 이사람이...!”
로만 역시 창문을 훌쩍 뛰어 넘어 뛰어 내렸다.
밖은 하얀색으로 가득했다. 모든 건물이 하얀색으로 빛났다. 대리석도 아니요 석고도 아닌 것이 우유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드문드문 초록의 수목이 보이지 않는다면 이곳은 눈이 부셔 바라볼 수 없을 정도였을지도 모른다. 이런 배경 속에서 샤일의 아쿠아마린빛의 머리는 한층 더 아름답게 빛났다. 하지만 분명히 눈에 띄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이보게!”
로만이 그의 뒤를 바짝 쫓았다. 그의 목소리에 다른 샬록들이 그들을 바라보았다. 아쿠아마린빛의 샤일의 머리카락을 보더니 잠시 인상을 찌푸리며 자신의 일상으로 돌아갔다.
저마다 이야기를 나누고 책을 읽거나 하는 아주 유유자적한 모습이었다.
“평화에 젖었어.”
로만의 말에 샤일은 살짝 웃음지으며 말했다.
“자네와 너무 어울리는 모습이 아닌가. 우직한 로만경.”
“이 모습이 좋아 보이는가?”
로만은 주변의 샬록을 가리켰다.
“자네는 몰록들의 모습을 보지 않았나? 그들은 항상 자신을 수련하며 노력하고 있지 않은가! 우리 샬록들을 보게! 이게 전쟁 중의 모습인가?!”
로만의 말에 샤일은 고개를 절래 흔들었다.
“엄밀히 휴전이지.”
“휴전도 전쟁이야!”
“오늘 자네가 말이 참 많구만.”
샤일은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절래 흔들었다.
“자네의 눈은 언제나 웃고 있군...”
“그게 어때서?”
로만은 짜증이 났는지 샤일의 늘 웃어서 감겨 있는 듯한 눈을 트집 잡았다.
“이봐, 친구인 내 앞에서도 그런 속을 알 수 없는 눈을 해야 하겠는가?”
“그래도 난 자네에게만은 거짓을 보인 적이 없네.”
완고한 듯한 샤일의 말에 로만은 고개를 절래 흔들었다.
“인간들의 방벽도시에는 또 언제 갈 것인가?”
“오늘 하루 잠을 자고 난 뒤 가볼까 하네.”
로만의 얼굴이 약간 굳어짐을 느낄 수 있었다.
“아까도 말했지만 귀족들의 눈초리가 좋지 않네. 자제해 주게나.”
“샬록들은 왜 그렇게 남의 취미에 관심이 많은겐가?”
샤일의 몸에서 약간의 살기가 느껴졌다. 웃는 듯 감은 눈과 어우러진 살기는 묘한 상승작용을 불러왔다. 이번에는 살기에도 로만은 멈추지 않았다.
“내가 그 버러지들이 살고 있는 방벽도시를 없애야 그 취미를 멈출텐가?”
로만이 주춤하더니 뒤로 물러났다. 웃음 짓던 그의 눈빛이 변했다. 차갑고 날카로웠다.
“말을 함부로 하는 게 아니야.”
엄청난 살기에 주변의 샬록들도 샤일을 바라보았다. 로만의 이마에서 한줄기 땀이 흘러 내렸다. 땀은 공중에서 붉은 꽃으로 변하더니 사방으로 흩어졌다.
“아, 알았네... 내가 실언했네.”
로만은 땀을 닦아내고 고개를 숙였다.
“그런데 자네 왜 온 건가?”
다시 눈동자가 볼 수 없게 웃고 있는 샤일의 모습에 로만은 다시금 식은땀을 흘렸다. 이 속을 알 수 없는 표정은 이 사내의 가장 큰 장점이자 단점이다.
“아아... 내가 죽은 다음에 묻지 그랬나?”
“아아, 미안하이.”
로만에게 어깨동무한 그는 살갑게 웃었다.
“에휴... 이런 위험하고도 둔감한 친구를 둔 내 죄가 아니겠나.”
그는 샤일의 어깨동무를 뿌리치고 말했다.
“귀족회의에서 자네를 보자고 하네. 무슨 큰 일을 시킬 것 같은 느낌이네만.”
샤일은 또다시 속을 알 수 없는 눈빛으로 로만을 바라보았다. 다시금 한숨을 내쉬는 로만은 앞서서 걸었다.
“빨리 따라 오게나.”
샤일은 그의 뒤를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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