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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8/01 10:56

무제-Chapter.1 샬록의 방벽도시 part.6-

똑똑똑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

지하감옥은 몇 년이 되었던 간에 습하고 더럽다. 지푸라기가 아무렇게 쌓인 이곳에 하류와 피터가 너부러져 있다. 두 사내는 아직 마취가 풀리지 않은 듯 잠들어 있었다. 얼굴로 더러운 물방울이 똑똑 떨어지자 그들은 눈을 떴다.

“으윽...!”

누가 먼저라 할 것이 없이 머리를 매만졌다. 깨질듯 아픈 듯 인상은 무척이나 일그러졌다.

“아... 구질구질하구만.”

피터는 아픈 머리를 매만지며 지푸라기를 벽 쪽으로 모아 기대고 앉았다.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칙칙한 이끼와 미끄러운 무언가가 만져지자 피터의 얼굴은 일그러졌다.

“도대체 이렇게 더러운 곳은 뭐하는 곳이야.”

피터는 계속 머리를 매만졌다. 한쪽 속으로는 손에 묻은 더러운 액체와 고체의 중간상태의 것을 털어냈다. 하류는 그대로 누워서 그저 허공만 쳐다보았다.

“도대체 며칠을 정신을 잃었던 거지? 꺼내줘 이 병신들아! Mother fucker!!”

피터는 소리 질렀다. 그의 외침에 간수가 철창을 탁탁 치며 조용히 하라고 눈치를 줬다. 피터는 입을 삐죽이 내밀었다.

하류는 몸을 일으켜 창밖을 바라보았다. 달이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다. 흑단 같은 하늘에 달은 진주처럼 빛났다.

“응?”

달 아래 흰빛으로 빛나는 아름다운 인영이 내려왔다. 푸른 달빛을 받아 영롱하게 빛나는 인영은 아주 아름다운 모습의 여신과도 같았다. 너무도 아름다워 도저히 살아 있는 생명체로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허나 펄럭이는 긴 머리카락 사이로 보이는 뾰족하고 긴 귀는 깃털로 뒤덮여 있었다.

“샬록이군.”

하류는 인상을 찌푸렸다. 아무리 아름다운 모습이라고 해도 샬록이다. 인간을 괴롭히는 샬록.

“피터아저씨 가자.”

하류가 일어섰다. 피터는 의아해하며 물었다.

“이봐, 보이! 내가 아저씨라고 하지 말랬지.”

“이곳에 있는 샬록이 우리 아버지가 아니라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했어. 더 이상 있을 이유가 없지.”

피터는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그럼 이곳에 남아 있을 이유는 없군.”

“피터아저씨는 남아 있어. 같이 움직일 이유가 없잖아.”

“노예가 되길 싫거든. 그건 내가 결정한다, 보이.”

피터는 자리를 털고 일어나 철창 앞으로 나아갔다.

“이봐.”

그는 간수를 불렀다. 간수는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좀 쉬어.”

피터는 그의 목덜미를 살짝 쳤다. 간수는 힘없이 쓰러졌고 피터는 철창을 잡았다.

“흐읍...!”

숨을 들어 마시고 철창을 구부러트리는 피터. 하류는 인상을 찌푸렸다.

“할 수 있으면서 왜 안 한거야?”

“해달라고 하지 않았잖아, 보이~?”

두 사람은 철창이 구부러진 틈을 따라 밖으로 나갔다.

감옥의 복도에 서 있는 간수들을 조용히 소리 없이 하나씩 처치했다. 모두 죽이지는 않았다. 그저 기절만 시킨 것이다. 사람을 죽이지 않고 기절만 시키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이다. 이것은 두 사람이 바운티헌터로 일 해왔던 경험 때문인 듯 했다. 감옥을 빠져 나온 피터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주변 100미터 안쪽에는 인간으로 추정되는 열원이 없음.”

“도대체 어디까지가 기계야?”

“비밀이야.”

피터는 빠르게 내달렸다. 하류 역시 그의 뒤를 따랐다.

감옥은 다행이도 방벽과 얼마 차이가 나지 않은 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범죄자들을 가두는 곳이니 인가와는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 좋긴 하다.

“그래도 너무 쉬운데?”

피터의 말에 하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슨 말이야?”

“아무리 평화로운 곳이라지만 탈옥한 사람들을 쫓는 사람이 없잖아. 아무리 우리가 소리가 없이 움직였다고 하지만 조용하기도 너무 조용해.”

"평화에 찌들어 있겠지. 샬록의 보호 아래 식량도 많겠다. 무슨 걱정이 있겠어.“

하류의 말에 피터는 고개는 끄덕였으나 찌푸려진 미간은 펴지지 않았다.

그들은 능숙하게 벽을 기어올랐다. 아무리 매끈하게 만들어진 방벽이라도 틈은 존재하는 법. 그 틈을 잘 집어서 조금씩 올라갔다. 방벽의 끝으로 올라와 머리를 조금 내밀고 살폈다. 방벽 위 수비병이 하품을 하며 한가로이 거닐고 있었다. 피터는 훌쩍 뛰어올라 그의 목덜미를 툭 쳤다. 이 근처의 수비병은 이자뿐이었다.

“허술해.”

피터는 인상을 다시금 찌푸리고 방벽 밖을 보았다. 그는 조그마한 돌멩이를 집에 던졌다. 어느 정도 날아간 돌멩이는 푸른 불꽃이 일며 파지직 거리는 소리와 함께 사스러졌다.

“저 에너지 장벽을 없애지 않으면 밖으로 나갈 수가 없을 것 같아.”

피터의 말에 하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찾아보면 방법이 있지 않을까?”

하류의 물음에 피터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무리야. 아마도 이 장벽이 이 방벽도시의 치안을 허술하게 만드는 것 같군.”

-맞는 말이에요.-

순간 일어난 인기척에 하류와 피터는 깜짝 놀라 뒤로 물러섰다. 뒤쪽에는 아름답게 빛나는 하얀 느낌의 여인이 서 있었다. 여인이라고 하기에는 앳돼 보였지만 앳돼 보이기에는 뭔가 중후한 느낌이 흘러 넘쳤다.

-당신이 이곳을 다스리는 샬록인가요?-

하류의 물음에 그녀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아니, 나는 도움을 줄 뿐이에요. 이들 위에서 군림하거나 하지는 않는답니다.-

환한 웃음을 보이는 그녀의 모습에 하류는 인상을 찌푸렸다. 인간을 도륙하는 샬록의 웃음이라기에는 너무도 환했기 때문이다.

-어디를 가시려는 거죠?-

그녀의 물음에 하류가 달려들려 했다. 하지만 피터가 막아섰다.

“넌 샬록의 힘을 알고 이러는 거야? 지난번 몰록의 힘을 봤잖아. 몰록과 샬록의 힘은 동등하다.”

피터의 눈이 냉철하게 빛났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만 당신이 걱정할 것은 아닌 것 같군요.-

샬록의 말에 피터는 하류를 바라보았다.

“오지랖이 넓다는군.”

“잘 알고 있다고 말해라.”

“그럴 필요 없을 거야.”

하류는 피터가 막아설 틈도 없이 그녀를 향해 달려들었다.

“나도 샬록의 피는 흐르고 있어!”

그의 손에서 누런빛의 뇌전이 이글거렸다. 샬록의 여인의 얼굴이 굳어졌다. 뇌전은 샬록의 힘 중에서도 가장 강한 기운이다.

“먹어라!!”

하류는 그녀를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하지만 그의 주먹은 그녀의 가녀린 손아귀에 멈춰 섰다.

“아니!”

하류는 놀라고 말았다.

-힘은 어떻게 발현했지?-

-힘을 발현했는지도 몰랐어. 난 그저 당신의 얼굴에 한방 먹이고 싶었던 것뿐이야.-

그녀는 피식하고 웃음을 보였다.

-인간인가?-

-3분의 1은 인간이지.-

그녀의 얼굴이 다시금 찌푸려졌다.

-샬록과 몰록과 인간의 혼혈인가?-

하류는 고개를 끄덕이며 뒤로 물러났다.

-샬록과 몰록과 인간의 혼혈이라... 거기에 샬록의 힘 중 가장 발현이 힘들다는 뇌전까지...-

그녀는 하류를 아주 흥미로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마치 과학자가 실험 대상을 만난 눈빛이었다.

-당신을 억류하겠어요.-

“할 수 있으면 해봐!!”

하류는 크게 외치고 샬록의 여인에게 달려들었다. 이제는 그의 양손이 뇌전으로 뒤덮였다.

-뇌전은 그렇게 쓰는 게 아니야.-

여인은 손을 들었다. 그의 손에서 푸른 뇌전이 이글거렸다.

-이렇게 쓰는 거야!-

그녀가 팔을 휘두르자 푸른 뇌전이 하늘로 올라가 구름에 머금어졌다. 순식간에 벼락처럼 떨어지는 푸른 뇌전!

“하류!!!”

하류에게 직격했다. 그는 뇌전에 몸이 감전되어 부르르 떨더니 그대로 주저앉았다.

-걱정 말아, 인간. 아... 기계가 섞여 있군. 아무튼 이 소년은 무사하니까. 죽지 않을 정도로만 했으니까.-

그녀는 피터에게 손가락을 까닥했다. 따라오라는 제스처. 피터는 쭈뼛거리고 뒤따랐다. 후다닥 달려가 하류의 심장소리를 귀에 대고 들었다. 미약하게나마 심장은 뛰었다. 그런 그를 바라보던 그녀는 한숨을 내쉬며 손을 까딱 위로 올렸다. 그러자 하류가 떠올랐다. 그녀는 뒤돌아보고 걸었다.

-그래도 나 이외에 뇌전을 쓰는 존재는 처음 보는데? 아... 2번째인가? 그 녀석 말이야.-

그녀는 뒤 돌아 보았다. 피터가 쭈뼛거리고 있었다.

-안 따라오고 뭐해!-

그녀의 카랑카랑한 일갈에 피터가 정신이 번쩍 든 듯 몸을 움찔했다. 그녀의 말뜻은 알 수 없었지만 그는 그녀의 뒤를 따랐다. 지금 그녀의 심기를 건드려 봤자 좋을 게 하나도 없으니까.

그들이 이동한 곳은 이 방벽도시의 중심에 위치한 하얀 건물이었다. 대리석으로 지어진 건물은 샬록의 건물과 양식이 비슷했다. 허나 재료를 구할 수는 없었는지 샬록의 그것과는 달랐다. 그 앞에는 두명의 병사가 지키고 있었다. 샬록은 인간보다 그 힘이나 지혜가 더 뛰어나다. 이런 병사가 지키고 있을 필요가 없다. 하지만 이곳의 인간들이 그녀를 신처럼 따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녀는 경비병들에게 웃으며 목례하고 안으로 들어섰다. 안으로 들어서자 인간의 집과 많이 다르지 않았다. 가구며 모든 것이 인간이 쓰는 것들이었다.

“악취미로군...”

피터는 혀를 내둘렀다. 인간을 동경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인간을 좋아하는 것만은 확실했다. 샬록이라면 인간을 죽이는 것이 더 어울리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피터는 다시 한 번 혀를 내두른다.

-앉으세요.-

피터에게 권하고 그녀가 손짓하자 침대 위로 하류가 살포시 눕혀졌다. 피터는 무슨 말을 하는지 몰라 멀뚱히 서 있었다. 그녀는 그에게 의자를 가리켰고, 그는 그녀의 의도를 알아채고 자리에 앉았다.

어색한 침묵.

피터는 에스토란토어와 영어만 할 수 있다. 이 샬록은 이곳의 언어인 ‘한국어’와 샬록의 언어만 사용할 수 있다. 이상한 기류가 흐르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녀가 자리에 앉아 시중을 드는 여인이 차를 가지고 나왔다. 그녀를 향해 샬록의 여성이 무엇인가 말을 하자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은 영어를 할 수 있나요?”

여인의 물음에 피터는 고개를 끄덕였다.

“영어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었군요. 이제 덜 답답하네.”

피터는 의자에 몸을 푹 맡겼다.

-내 이름은 록산느에요.-

그녀의 말을 피터에게 통역했다. 피터는 고개를 끄덕였다.

“난 피터.”

피터는 대화의 물고를 튼 것 같이 한숨 놨다.

“왜 우리를 이곳에 데리고 온 거지?”

그의 물음에 록산느는 웃음을 보이며 대답했다.

“저 소년에게 관심이 있거든요.”

“하류에게?”

“그래요.”

하류를 바라보던 록산느는 천천히 차를 들이켰다.

“샬록과 몰록의 혼혈은 그리 많지가 않거든요. 게다가 저 소년은 인간의 피도 흐르는 것 같더군요. 거기에 나 이외에 샬록의 역사상 단 한명만 쓸 수 있었던 뇌전을 쓰니 더 관심이 가는 거죠. 게다가 그 뇌전을 사용한 사람도 혼혈이었거든요.”

굉장히 빠르게 말을 이었다. 피터는 넋이 나간 표정으로 여인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웃으며 차근차근 그녀의 말을 통역해 주었다.

“한마디로 실험체로 쓰겠다는 거군.”

“아뇨. 달라요. 이 소년을 강하게 만들어 주겠다는 거죠.”

강하게 해주겠다는 말에 피터는 눈을 크게 떴다.

“사실 우리는 하류의 아버지를 만나기 위한 여행 중이었지. 하류 속에 감춰진 힘을 일깨워 주기 위해. 당신이 강하게 만들어 준다면 우리야 바랄게 없지.”

“저 소년은 왜 강해지고 싶은 거죠?”

“몰록에게 복수하기 위해. 당신은 왜 이 아이를 강하게 만들려는 거지? 하류는 샬록 몰록 인간의 피를 모두 가지고 있지만 인간에게 더 가까운 아이야. 힘을 일깨워 준다면 샬록의 적이 될 텐데 괜찮나?”

피터의 물음에 그녀는 옅은 미소와 함께 말을 이었다.

“나는 인간들의 기준으로 보면 학자에요. 학자에게 탐구는 어떠한 것보다 더 신성한 것이죠. 난 학문을 위해 이 소년을 강하게 하려는 거에요. 하지만 우리 샬록에게 해를 끼친다면 죽일 수밖에 없어요.”

“그거 협박인가?”

피터는 차를 마시며 그녀를 노려보았다.

“네.”

록산느의 대답에도 피터는 그녀를 한참을 노려보았다. 강렬한 살기는 마치 인간의 것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이 강렬한 기운에 샬록인 록산느도 압도되는 듯 했다. 하지만 그녀는 샬록 인간에게 압도당할 사람은 아니었다.

“그만 노려보지 그래요?”

그녀의 핀잔에 피터는 살기를 거두었다. 그때 하류는 신음소리와 함께 깨어났다. 일어난 그는 한참을 두리번거렸다. 싸움 이후의 난데없이 집안으로 들어와 있으니 어안이 벙벙할 만도 했다.

“여기는?”

“우리 집이야.”

록산느의 말에 하류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다시 싸우기 위해 자세를 잡았다. 하지만 뇌전의 여파는 아직 가셔지지 않은 듯 다리를 휘청거리다 무릎을 꿇었다.

“그렇게 긴장할 것 없어, 보이.”

유유자적 차를 마시는 피터의 모습을 본 하류는 그를 나무랐다.

“지금 적의 집에서 차나 마실 때야?”

“일단 적은 아닌 것 같다, 보이.”

하류는 록산느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옅은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난 록산느. 너를 강하게 만들어줄 사람이야.”

“이유가 뭐지?”

록산느는 하류를 재미있다는 듯 쳐다보았다.

“그저 무료했다고 하면 말이 되려나? 하지만 공짜로 가르쳐 주지는 않아.”

“무슨 소리냐.”

“지금이 우리 샬록과 몰록이 전쟁 중인 것은 알고 있지?”

“그것을 모를 리가 있나. 덕분에 우리 인간이 힘겹게 살고 있으니까.”

우리 인간이라는 말에 더욱더 재미있는 듯 미소는 짙어졌다.

“그래서 그 전쟁에 너를 투입하게 될 거야.”

“무슨 이유에서이지?”

“난 학자야. 싸움에 나서고 싶지 않아. 하지만 나에게도 체면이라는 것은 있거든. 너는 나의 종자로서 싸우는 거야.”

하류는 생각에 잠겼다. 무엇이 그에게 더 이익인지 머리를 굴리는 중인 듯 했다.

“정말로 날 강하게 해줄 수 있어? 어떻게 당신을 신뢰해야 하지?”

“믿지 않아도 좋아. 하지만 난 이세계의 영웅이라고 불리던 인간도 내 손으로 교육 했으니까.”

“그래서?”

하류의 또다시 이어진 물음에 그녀는 찻잔을 내려놓고 말했다.

“너 몰록에게 복수하고 싶다고 했지? 몰록에게 복수하려면 몰록과 만나야 될 거 아니야. 네가 복수하려는 몰록이 누군지 모르겠지만, 네가 싸우고 또 싸워야 만날 수 있을 거 아냐. 싸울수록 만날 확률이 높아질 거 아냐.”

그녀의 조리 있는 말에 하류는 고개를 끄덕였다.

“믿어보지.”

“이봐 소년.”

하류의 대답에 아직 그녀를 믿을 수 없는 피터는 만류하는 듯 했다. 록산느는 그 둘을 신경도 쓰지 않은 채 그저 차만 마실 뿐이었다.

“차맛이 좋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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