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이곳은 반도에 위치한 어느 한 지역이었다. 예전에는 하나의 민족이 분열하여 서로 대치하던 곳이기도 하다. 넓지도 않은 땅인데 지금도 샬록과 몰록이 대치를 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예나 지금이나 이곳은 지정학적으로 굉장히 중요한 위치인 듯 했다.
하지만 예전처럼 이곳은 실록이 푸르지 않다. 사막과 바위로 가득한 메마른 땅이 되었다. 4계절이 뚜렷한 것이 이 지역의 자랑이었지만 이제는 아니다.
그곳에 자리 잡은 아주 커다란 방벽도시. 방벽의 높이는 그리 높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을 둘러싸고 있는 강맹한 에너지가 느껴졌다. 날아가던 새가 방벽도시를 향해 다가오자 파지직 소리를 내며 타버리고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인간의 기술은 아니로군.”
방벽도시의 앞에 선 금발머리의 사내가 망토로 가린 입을 다시 보이며 말했다. 그는 피터였다.
“샬록의 기술이 아닐까?”
하얀 뾰족하고 길다린 귀를 가진 회색머리의 소년 하류가 읊조렸다. 그의 얼굴에는 씁쓸한 듯도 하고 기쁜 듯도 한 묘한 웃음기가 감돌았다.
“그럼 이곳에서 네가 강해질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는 건가, 보이?”
피터의 물음에 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아버지를 만나야 가능하지.”“네 아버지는 샬록과 몰록의 혼혈이라고 했잖아. 그가 있으니까 이 방벽도시가 샬록의 테크놀로지를 가지고 있는 것 아닌가?”
“그건 모르는 일이야. 샬록의 기술을 훔쳤을 수도 있으니까.”
“그건 말이 되지 않아, 보이.”
두 사람은 방벽 도시의 감시탑 쪽을 찾아 벽 둘레를 걸었다. 그러자 감시병으로 보이는 자를 발견할 수가 있었다. 그는 기존 인간들의 무기인 총을 사용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아니 아무런 무기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마법사인가?”
피터의 말에 하류는 고개를 흔들며 물었다.
“도대체 마법, 마법 하는데 그게 뭐야?”
“말 그대로 마법이지. 자연계의 힘을 이용하여 물리력을 행사하는 힘.”
“그딴게 존재할 리가 없잖아.”
“아니 옛날부터 존재했지만 과학이 발달함으로서 잊힌 힘이야. 하지만 마법의 힘을 깨닫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은 아닌데...”
“헛소리...”
피터의 말에 하류는 모르겠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거기 누구냐!”
감시병은 그들을 발견했다.
“아! 이곳에 인간에게 도움을 주는 인간이 아닌 자가 있다고 들었소!”
피터의 물음에 감시병은 한참을 그들을 노려보았다.
“내 말을 못 알아듣나 보다.”
피터는 고개를 절래 흔들었다.
-이곳에 인간에게 도움을 주는 인간이 아닌 자가 있나요?-
“이곳 말을 아는 거야?
하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정보는 어디서 들었나?-
-일전에 들렀던 방벽도시에서 들었어요!-
하류의 외침에 감시병은 그들을 계속해서 의심스러운 눈으로 쳐다보더니 빈손으로 마치 화살을 쥐듯 했다. 그러자 푸른빛으로 화살모양의 에너지가 형성되었다.
“역시 마법사로군.”
하류는 놀라고 말았다. 인간이 저런 능력을 쓰리라고는 전혀 생각도 못했기 때문이었다.
-공격하지 마요! 우리는 적이 아니에요!-
-네놈들이 몰록의 첩자인 줄 알게 뭐냐!-
하류는 한숨을 내쉬며 후드를 걷어내려 했다. 그러자 피터가 막아섰다.
“지금 네 정체를 밝혀서 좋을 게 없어.”
“몰록이 아니라는 것을 알리면 더 좋지 않을까?”
“과연 그럴까...”
하류는 후드를 걷어냈다 회색 머리카락이 드러났고 그 옆으로 하얗고 긴 귀가 나타났다. 경비병의 눈살이 약간 찌푸려졌다.
-잠깐 기다리시오.-
경비병의 모습이 사라졌다.
“너무 간단한데?”
피터의 말에 하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윽고 경비병의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두 사내에게 아무런 말없이 손짓했다. 그가 가리킨 곳은 이 방벽도시의 입구인 듯 보였다. 안에서 자급자족을 해야 하는 방벽도시의 특성상 입구는 필요 없다. 하지만 하류의 고향 방벽도시의 예를 봐서도 그렇듯 입구가 없을 수는 없다. 밖과의 연계가 아예 없을 수는 없으니 말이다.
입구에 도착하자 그 부분만 에너지 장벽이 사라졌다.
“으윽...”
키가 큰 피터의 등 부분이 약간 방벽에 닿아 치지직 소리를 냈다. 두 사람은 조심스럽게 입구를 열고 들어서자 그들의 눈에 들어 온 것은 넓은 논이었다. 논은 정확하게 사각형으로 잘 갖추어져 있었다. 듬성듬성 밭도 보이는 것이 식량을 자급자족하는 듯 했다. 이정도 크기라면 수십만 명은 족히 먹을 수 있을 정도였다. 그 정도로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그 논과 밭에서 많은 사람들이 일을 하고 있었다. 저 멀리서는 소와 돼지등도 보였다. 완벽한 농촌의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밖은 사막인데 이곳은 완전히 초원이로군. 이정도면 엄청난 사람들이 모여서 살 수 있겠어.”
피터의 말에 하류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순간 그들의 눈에 들어온 재래식 무기. 총이었다. 수많은 총구들이 그들의 머리를 향해 겨눠졌다.
-움직이면 쏘겠다.-
많은 사람들이 그들에게 총을 겨누며 서 있었다. 그중에는 석궁을 들고 있는 자들도 있었다.
“하하...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만 손을 들어야겠지?”
“그래 손을 들라는 말이야.”
피터는 너스레 좋게 웃으며 두 손을 들었다. 하류 역시 두 손을 들고 사방을 살폈다. 밭 주변으로 시체가 목이 걸려 널려 있는 것이 보였다.
-식량을 기르는 곳에 시체가 걸려 있는 것이 보기 좋지는 않네.-
하류의 비아냥거리며 물었다. 피터는 궁금증을 풀려 다시 물었다.
“저들의 말을 아는 거야?”
“응. 이건 한국의 말이야.”
경비병들 사이에서 수염을 보기 좋게 기른 노인이 비집고 나왔다.
-이것이 바로 자연의 순환이지. 사람도 죽으면 거름이 되고 그 거름은 이 땅을 비옥하게 만들지.-
노인의 말에 피터는 고개를 절래 흔들었다.
-그렇다고 시체를 걸어 놓는 건 말이 안 되죠.-
하류의 물음에 노인은 웃음을 보였다.
-우리말을 아는 샬록이라. 어디서 온 거냐?-
-난 샬록이지만 샬록이 아닙니다. 혹시 이곳은 샤일이라는 샬록과 몰록의 혼혈이 다스리는 곳입니까?-
하류의 말에 노인은 고개를 절래 흔들었다.
-그런 이름의 샬록은 없지. 자네는 왜 그 이름의 샬록을 찾는 겐가?-
-알 것 없지 않습니까. 우리는 이만 나가보겠습니다.-
하류는 피터에게 눈짓했다. 피터는 손을 내리며 하류의 뒤를 따랐다.
-멈춰라!-
노인이었다. 그의 목소리와 함께 하류와 피터의 코앞까지 총구가 겨눠졌다.
-네놈들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단 두 가지뿐이다. 이곳에서 노예가 되든지 아니면 저렇게 되던지.-
노인은 시체를 가리켰다. 피터는 침을 꼴깍 삼킨 후 나지막이 하류에게 말했다.
“우리가 힘을 좀 쓰면 이 사람들을 모두 죽일 수 있어. 그리고 도망치자.”
하류는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더 눈치를 보다가 시작하자고, 아저씨.”
-무슨 말을 주고받는지는 모르겠다마는 이 결정은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수호신인 천녀께서 오셔야 한다.-
노인의 입에서 천녀라는 말이 나오자 주변의 사람들이 두 손 모아 기도했다.
-이들을 감옥에 가둬라.-
총을 든 사람들이 피터와 하류를 향해 총구를 겨냥했다. 하지만 순순히 따라갈 두 사람이 아니었다. 하류가 손을 뻗자 나이프가 튀어 나왔고, 피터의 손에서는 붉은 화염이 맺혔다.
“비켜!”
피터가 먼저 뛰어 나갔다. 그러자 그는 아무런 힘도 못쓰고 풀썩하고 쓰러졌다. 당황한 하류는 피터의 등을 보았다. 그의 등에는 마취탄이 꽂혀 있었다.
“제기랄!”
피터는 총이 날아온 궤적의 끝을 바라보았다. 한 사내가 총을 겨누고 있었다. 장발을 곱게 묶은 사내였다. 아직도 하류를 겨누고 있었다.
하류는 빠르게 내달렸다. 일직선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사내를 향해 지그재그로 뛰었다. 사내는 조심스럽게 그를 겨누고 있지만 표적이 움직이니 짜증이 날만도 했다. 그의 근처까지 뛰어온 하류는 하늘로 솟구쳤다. 사내에게 내려치려 나이프를 높이 들었다. 내리치려는 찰나!
“크윽!!”
그의 몸이 공중에서 멈춰 버렸다. 사내는 그에게 손을 뻗고 있었고 손에서 푸른 기운이 일렁거렸다.
-어린 녀석이 굉장히 재빠르구나. 하지만 잠들어야겠다.-
그는 가차 없이 하류를 향해 마취총을 쏘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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